장합
장합(張郃, 151? ~ 231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자는 준예(儁乂)이며 기주 하간국 막현(鄚縣) 사람이다. 오자양장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위나라 장수들중 유일하게 제갈량의 북벌군을 모두 막아낸 명장이기도 하다. 배잠론(裴潛論)에서 장합은 기주목 한복 밑에 있었는데 한복이 원소군에 합병하면서 자연스럽게 원소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장합은 수많은 공을 세우며 원소군의 주요한 위치에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며 후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면서 지장(智將)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평했다.
출생~사망 167년 ~ 23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67년 ~ 231년
- 출생
- 151?, 기주 하간국 막현
- 사망
- 231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위나라
- 직업
- 장군
- 활동 기간
- 후한 말 ~ 삼국시대
- 소속
- 위나라
- 위치
- 38.8600, 116.1244
장합(張郃, 151? ~ 231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자는 준예(儁乂)이며 기주 하간국 막현(鄚縣) 사람이다. 오자양장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위나라 장수들중 유일하게 제갈량의 북벌군을 모두 막아낸 명장이기도 하다.
배잠론(裴潛論)에서 장합은 기주목 한복 밑에 있었는데 한복이 원소군에 합병하면서 자연스럽게 원소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장합은 수많은 공을 세우며 원소군의 주요한 위치에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며 후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면서 지장(智將)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평했다.
생애
원소의 수하시절
젊은 시절에 황건적의 난에서 반란군 진압의 모병에 응하여 한복(韓馥)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한복의 몰락 후에는 원소(袁紹)을 섬겨 교위(校尉)에 임명되었다. 공손찬(公孫瓚)과의 싸움 등에서 활약한 공적으로 영국중랑장(寧國中郞將)까지 출세하였다.
200년, 관도대전(官渡)의 오소(烏巢) 공방전에서 조조(曹操)의 군세는 강하므로, 오소를 지키는 순우경(淳于瓊)에게 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원소에게 진언하였으나, 동료인 곽도(郭圖)는 반대하며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는 것이 좋다고 진언하였다. 장합은 조조군의 본진을 간단히 함락시킬 수 없다고 이견을 내었으나, 원소는 경기병만을 오소의 원군으로 보내고, 대군으로 조조군의 본진을 공격하게 했다. 하지만 원소와 곽도의 예상과는 반대로 오소가 먼저 조조에게 넘어갔다. 순우경이 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장합은 고람(高覽)과 함께 원소를 배신하여 그를 공격하고 진영을 불태운 뒤 조조에게 투항하였다. 이로 인해 총대장의 생사마저도 불확실해진 원소군은 대혼란에 빠져 사실상 붕괴되었다.
조조의 휘하가 되다
조홍(曹洪)과 순유(荀攸)는 조조에게서 본진의 수비를 임명받아 지키고 있었다. 조홍은 장합의 항복을 괴이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으나, 순유는 “장합이 항복하는 것은 자신의 계략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분노해서 항복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장합을 맞이하게 했다. 또한 순우경의 패배가 자신의 잘못이라 느낀 곽도가 “장합은 패배를 기뻐하고, 불손한 말을 내뱉었습니다.”라고 참언을 했기 때문에 장합은 후환이 두려워 조조에게 항복했다는 설도 있다.1 조조는 장합의 항복을 기뻐하고 “오자서(伍子胥)는 자신이 잘못된 군주를 섬긴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대가 나에게 항복한 것은 (微子啓)가 를 배신하고 를 섬긴 것과, 이 를 버리고, 을 섬긴 것처럼 올바르고 정당한 행동이다.”라고 극찬하며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하고 도정후(都亭侯)에 임명했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장합」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559792)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 r35077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