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속
마속(馬謖, 190년 ~ 228년)은 중국 촉한의 장수로 자는 유상(幼常)이며 형주 양양군(襄陽郡) 의성현(宜城縣) 사람이다. 제갈량의 신임을 받았으나 가정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제1차 북벌을 말아먹은 책임을 지고 죽었다. 여기서 '원칙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이 유래하였다. 배잠(裴潛)은 마속이 젊은 나이임에도 재능이 넘쳐 유비가 등용하였으며 이후 제갈량과 군략을 논할만큼 지략이 출중했다고 평했다.
출생~사망 190년 ~ 22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마속(馬謖, 190년 ~ 228년)은 중국 촉한의 장수로 자는 유상(幼常)이며 형주 양양군(襄陽郡) 의성현(宜城縣) 사람이다. 제갈량의 신임을 받았으나 가정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제1차 북벌을 말아먹은 책임을 지고 죽었다. 여기서 '원칙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이 유래하였다.
배잠(裴潛)은 마속이 젊은 나이임에도 재능이 넘쳐 유비가 등용하였으며 이후 제갈량과 군략을 논할만큼 지략이 출중했다고 평했다.
생애
제갈량의 신임
형주종사(―從事)로서 유비를 따라 익주로 들어가 면죽현령(緜竹―), 성도현령, 월수태수(越巂, 越嶲―)를 역임하였다. 지혜와 기량이 뛰어나서 군략을 잘 논하므로 제갈량이 매우 아꼈다. 유비는 유언을 남길 때 마속을 중용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제갈량은 개의치 않고 마속을 참군(參軍)으로 삼아 밤낮으로 전략을 상의하였다. 225년(건흥 3년) 제갈량이 남중을 정벌하려 하자 마속이 수십 리를 배웅하며 “그들은 멀고 험함을 의지하여 불복한 지 오래이니 일시적으로 무력으로 눌러봐야 다시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 마음을 얻으십시오.”라고 조언하였다. 그 조언대로 맹획을 용서하니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남방이 편안했다.
가정 전투
227년 제갈량이 제1차 북벌을 개시했다. 228년 제갈량은 조운과 가 군 주력을 기곡(箕谷)으로 유인하는 동안 본대가 기산(祁山) 방면으로 나아가 서부를 접수하며 협격하려 하였다. 장수들은 노련한 이나 가 마땅히 선봉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제갈량은 마속으로 하여금 앞에서 대군을 통솔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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