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전투
1894년 9월 15일 일본군이 평양성에 집결한 청군을 공격해 이튿날 함락시킨 청일 전쟁의 결정적 육상 전투. 청군은 압록강 너머로 물러나 한반도에서 밀려났다.
시작~종료 1894년 9월 15일 ~ 1894년 9월 16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평양 전투는 청일 전쟁의 두 번째 주요 육상 전투이자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청·일 결전이다. 1894년 9월 15일 일본군이 여러 방향에서 평양성을 공격했고, 그날 밤 청군이 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나면서 16일 일본군이 평양을 점령했다. 이틀 뒤 황해 해전의 승리와 더불어 일본은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배경
성환 전투 뒤 청은 평양을 거점으로 삼아 대군을 집결시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평양에 모인 청군은 1만 4,000명이었다. 성환에서 패해 북상한 섭지초의 부대도 합류했고, 섭지초가 총지휘를 맡았다. 청군은 대동강을 끼고 평양성과 그 주변 보루를 강화했다.
일본은 제5사단(사단장 노즈 미치쓰라)과 제3사단 일부를 동원해 서울과 원산 방면에서 평양으로 진군시켰다. 이후 이 부대들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지휘하는 제1군으로 편성되었다.
전개
일본군은 여러 갈래로 평양에 접근해 9월 15일 새벽 공격을 시작했다.
- 대동강 남쪽(선교리 방면)에서 공격한 부대는 청군 보루의 강한 저항에 막혀 큰 피해를 입었다.
- 북쪽에서는 일본군이 모란봉 일대의 청군 보루를 공격해 점령했다. 이곳을 지키던 청 장수 좌보귀(쭤바오구이)는 현무문 부근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 모란봉을 빼앗기자 성안의 청군은 사기를 잃었다. 섭지초는 오후에 백기를 내걸었고, 밤사이 비를 틈타 청군은 성을 빠져나가 의주 방면으로 퇴각했다. 퇴각 도중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가 났다.
9월 16일 일본군은 평양성에 들어갔다.
결과와 영향
- 청군은 압록강을 건너 물러났고, 이로써 한반도에서 청군 세력이 사실상 사라졌다.
- 9월 17일 황해 해전에서 북양 함대도 패하면서 일본은 육·해 양면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일본 제1군은 10월 하순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진격했다.
- 일본은 평양 승리를 계기로 조선에 대한 '적극 간섭 정책'으로 돌아서, 이노우에 가오루를 공사로 보내 갑오개혁에 깊이 개입했다.
- 전쟁터가 된 평양은 크게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피란과 징발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이설
청군 병력과 양측 사상자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크다. 위키백과는 탈출한 청군 수비대를 약 2,000명으로 적기도 하지만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335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