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 전투
1894년 7월 29일 충청도 직산현 성환(현 천안시 성환읍) 일대에서 일본군 혼성 여단이 아산에 주둔하던 청군을 격파한 전투. 청일 전쟁 최초의 육상 전투이다.
시작 1894년 7월 2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성환 전투는 청일 전쟁에서 처음 벌어진 육상 전투로, '아산 전투'라고도 한다. 1894년 7월 29일 새벽 오시마 요시마사 소장이 이끄는 일본군 혼성 여단이 성환에 진을 친 청군을 공격해 무너뜨렸다. 풍도 해전으로 증원이 끊긴 청군은 패한 뒤 공주·청주 방면을 거쳐 멀리 평양까지 물러났다.
배경
동학 농민 운동 진압을 명분으로 6월 초 아산에 상륙한 청군은 섭지초(예즈차오)가 총지휘하고 섭사성(녜스청) 등이 이끌었다. 7월 23일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은 곧바로 혼성 여단 주력을 남쪽으로 보냈다.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청군 증원 병력을 실은 고승호가 격침되면서 아산의 청군은 고립되었다.
청군은 아산보다 방어에 유리한 성환으로 나와 월봉산 일대 고지에 진지를 구축했다. 섭지초는 본대를 이끌고 공주 쪽으로 물러나 있었다고 전한다.
양측 전력
일본군 병력은 4,000명 안팎, 청군은 3,000~3,500명 정도로 전해진다(위키백과). 정확한 숫자는 자료마다 다르다.
전개
일본군은 7월 28일 소사·진위 방면을 거쳐 남하해 그날 밤 성환 북쪽에 이르렀고, 29일 새벽 청군 진지를 공격했다. 안성천 일대 논을 건너던 일본군 선봉이 청군의 사격을 받아 피해를 입기도 했다(일본에서는 이때 전사한 나팔수 이야기가 선전에 쓰였다). 그러나 일본군 주력이 청군 진지의 측면을 돌아 공격하자 청군은 몇 시간 만에 무너져 아산 방면으로 달아났다. 일본군은 이어 아산을 점령했다.
결과
- 위키백과는 청군 사상자를 약 500명으로 전한다. 일본군 사상자는 이보다 훨씬 적었다.
- 패한 청군은 서울을 피해 공주·청주·충주 쪽 내륙을 돌아 북상해 평양의 청군과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지나는 고을에 큰 피해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 일본은 첫 육전 승리 뒤 8월 1일 청에 선전 포고를 했고, 이어 평양 전투에서 청군 주력을 격파했다.
- 전쟁터가 된 성환·아산·직산 일대 주민들은 군수품 징발과 노동력 동원에 시달렸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334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