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직
임병직(林炳稷, 1893년 10월 26일~1976년 9월 2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출생~사망 1893년 10월 26일 ~ 1976년 9월 2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2
문서 정보
임병직(林炳稷, 1893년 10월 26일~1976년 9월 21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이력
이승만의 미국에서의 외교 독립운동 당시 측근으로 보좌하던 인물 중의 한사람이었으며 그가 환국한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과 의장을 맡아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육군 대령과 외무부장관, 주유엔 대사와 주인도 총영사를 역임했다. 호는 소죽(小竹),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이다.
생애
생애 초반
임연상(林淵相)의 아들로 태어났고 동생으로 임병설(林炳卨)이 있었다.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관립외국어학교로 진학하였다. 1913년, 이승만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드와이트 무디가 설립한 마운트 허먼 스쿨과 오하이오 대학교를 다녔다. 이승만은 미국 유학을 하려던 임병직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1
대학재학 중 잡지 「한국학생평론」을 창간하여 편집장으로 활동, 한국의 독립활동을 기고하며 한국의 사정을 호소하였다.
독립운동
필라델피아의 재미한인교포 대회 서기장을 지낸 뒤 3.1운동추진회를 조직했고, 이후 이승만의 비서 겸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으로 독립운동에 활약하면서 일왕에게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라는 이승만의 친서를 일본 공사관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9월에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비서관을 지냈다. 임정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미국 19개 도시에 한미친우회의 조직을 지원하였다.
1920년 말, 이승만과 함께 하와이에서 상조회사를 운영하던 윌리엄 보스윅(William Borthwick)의 주선으로 을 거치지 않고 로 직행하는 중국인 시체가 담긴 관을 운송하는 배를 타고 마침내 상해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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