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묘묵
이묘묵(李卯默, 일본식 이름: 李宮卯默리노미야 보모쿠, 1902년 12월 9일 ~ 1957년 2월 27일)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인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출신이다. 해방 정국에서 한민당 창당과 군정청 사령관 하지의 한국인 비서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외교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출생~사망 1902년 12월 9일 ~ 1957년 2월 27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02년 12월 9일 ~ 1957년 2월 27일
- 본명
- 이묘묵
- 로마자 표기
- Lee Myomuk
- 출생
- 1902년 12월 9일,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 사망
- 1957년 2월 27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경력
- 한민당 창당, 군정청 사령관 하지의 한국인 비서, 외교관, 정치인
- 직업
- 교육인, 외교관, 정치인
- 활동 기간
- 일제강점기 ~ 1957년
- 소속
- 한민당
- 위치
- 38.8592, 125.8289
이묘묵(李卯默, 일본식 이름: 李宮卯默리노미야 보모쿠, 1902년 12월 9일 ~ 1957년 2월 27일1)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인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출신이다. 해방 정국에서 한민당 창당과 군정청 사령관 하지의 한국인 비서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외교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생애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중화군의 전주 이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평양의 광성학교(光成學校)를 1915년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1922년에 졸업하고 잠시 공주영명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1923년 7월 출국, 미국에 유학하여 1925년 오하이오주 마운트 유니온 대학교를 졸업했다.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 대학원에 진학, 1930년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1931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4년까지 미국에 머무르며 시라큐스대학에서 사학을 강의하였고 귀국하여 1936년 대영아시아학회 한국지부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30년대 중반 귀국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며 1944년 연희전문학교 도서관장과 학감을 겸임했다. 광복 후에는 영자신문을 창간해 초대 사장을 맡았고, 연희대학교 재단이사에도 취임했다.
1930년대 후반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가 전향서를 제출한 뒤, 수양동우회 사건 기소유예자 처분을 받기도 했다. 말기에 과 을 비롯해 여러 친일단체에 적극 가담한 행적이 있다. 연희전문학교 교장 자격으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등 전시체제 지원을 위해 결성된 단체에 참여했다. 가 황도사상 선양을 내세우며 조직한 발기인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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