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안
엄안(嚴顔, ? ~ ?)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익주(益州) 파군(巴郡) 임강현(臨江縣) 사람이다.
출생~사망 153년 ~ 23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엄안(嚴顔, ? ~ ?)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익주(益州) 파군(巴郡) 임강현(臨江縣) 사람이다.1
생애
유장(劉璋)을 섬겼다.
211년 유장이 장송(張松) 등의 말을 듣고 유비를 익주로 불러들였을 때, 엄안은 산에 호랑이를 놓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탄식했다.2
212년 유비는 익주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214년에는 형주로부터 진군해 온 장비(張飛)가 파군을 공격하여 엄안을 사로잡았다. 장비는 엄안이 저항한 것을 꾸짖고 처형하려 했으나 엄안은 끝까지 꿋꿋한 태도를 잃지 않았기에 포로의 처지에서 벗어나 장비의 빈객이 되었다.23 그 후의 행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관직
《자치통감》, 《삼국지》 장비전에서는 엄안이 파군태수였다고 하나,43 《화양국지》에서는 “파군태수 파서 사람 조작(趙筰)이 항거하여 지켰으나, 장비는 이를 공격하여 깨트렸고, 장군 엄안을 사로잡았다.”라고 하고 장비전의 기록이 틀렸다고 했다.2
《삼국지연의》에서 엄안
연의에서는 장비의 계책에 속아 성을 빠져나와 야습하려다가 장비에게 붙잡히는 것으로 나온다. 유비군에 항복한 후 익주의 관문들을 지키던 유장의 군사들을 설득하여 장비의 군사들이 순조롭게 진군하도록 도왔다. 덕분에 장비는 장임(張任)에게 쫓기던 유비를 제때 도울 수 있었다. 유비는 답례로 자신의 갑옷을 엄안에게 하사했다. 이후 장임을 사로잡고 낙성의 병사들을 설득해 항복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유비가 익주를 완전히 차지한 후 전장군(前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장합(張郃)이 가맹관(葭萌關)을 공격해오자 황충(黃忠)과 함께 싸워 무찌르고, 조조군의 군량이 보관된 천탕산(天蕩山)을 공격하면서 하후덕(夏侯德)을 베었다.
각주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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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거: 《화양국지(華陽國志)》 중국어 에 이 글과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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