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 전투
1592년 음력 4월 14일 부산진첨사 정발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 제1군에 맞서 부산진성을 지키다 전사한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
시작 1592년 5월 24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부산진 전투는 임진왜란의 첫 전투로, 1592년 음력 4월 14일(양력 5월 24일) 부산진첨사 정발(鄭撥)이 지키던 부산진성이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 제1군의 공격을 받아 하루 만에 함락된 싸움이다. 부산진성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일대에 있었으며, 정발을 기리는 정공단(鄭公壇)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배경
일본군 제1군은 1만 8천여 명(『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8,700명)으로 편성되어 쓰시마의 소 요시토시, 마쓰라 시게노부 등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음력 4월 13일 수백 척의 배로 부산 앞바다에 이르렀다. 정발은 마침 절영도(영도)에 사냥을 나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지만, 급히 성으로 돌아와 수비를 지휘하였다. 부산진은 경상좌수영 관할의 수군 진(鎭)으로, 성의 규모와 병력이 대군을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경과
- 4월 13일: 일본 함대가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여 정박하였다. 소 요시토시는 길을 빌려 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하나 조선 측은 응하지 않았다.
- 4월 14일 새벽: 일본군이 상륙하여 성을 포위하고 조총을 앞세워 공격하였다. 성안의 군민은 활로 맞섰으나, 일본군은 성벽을 넘어 들어왔다.
- 같은 날: 정발이 화살을 다 쏘고 전사하였고 성은 함락되었다. 성안의 군민 다수가 살해되었다. 정발의 첩 애향, 노비 용월 등도 함께 죽었다고 전한다.
부산진과 같은 날 인근의 다대포진도 공격을 받아 첨사 윤흥신이 전사하였다.
결과와 영향
부산진 함락은 조선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조총 부대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경상좌수사 박홍과 경상우수사 원균은 수군을 이끌고 맞서지 못하고 진영과 배를 버렸으며, 다음 날 일본군은 곧바로 동래성으로 향하였다. 정발에게는 뒤에 좌찬성이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이설
부산진 함락일은 대부분의 기록이 4월 14일로 같지만, 일본군 도착일을 『선조실록』과 『징비록』은 4월 13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진왜란」은 4월 14일로 적는다. 또 백과사전은 제1번대가 4월 14일 오전 8시 쓰시마를 출발해 오후 5시 부산 앞바다에 이르렀다고 서술하여, 부산진 공격 시점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238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