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빙
문빙(文聘, ? ~ ?)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자는 중업(仲業)이며 형주 남양군 완현(宛縣) 사람이다. 수십 년간 강하를 안정적으로 지켜냈다.
출생 연도 미상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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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본디 형주목 유표의 대장으로서 형주 북방을 지켰다. 208년(건안 13년)1 유표의 후계자 유종이 형주를 들어 조조에게 항복할 때 문빙은 형주를 지키지 못한 죄의 처벌을 기다릴 뿐이라며 남았다. 조조가 한수를 건너와서야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왜 늦게 왔냐고 묻자 ‘형주를 지켜 유표와 유종을 제대로 보필했어야 했는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실로 슬프고 부끄러워 일찍 볼 낯이 없었다’며 흐느껴 울었다. 조조가 문빙은 진정한 충신이라며 후하게 대했다. 조순과 함께 유비를 쫓아 당양현(當陽縣) 장판(長阪)에서 깨트렸다.
강하군은 동오와 붙어있어 민심이 불안했기에 강하태수와 관내후(關內侯)에 임명되어 변경을 방비하였다. 악진과 같이 심구(尋口)에서 관우를 쳐부숴 연수정후(延壽亭侯)에 토역장군(討逆將軍)을 더했다. 한진(漢津)에 있던 관우의 치중을 공격하여 형성(荊城)에서 그 배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220년(연강 원년)2 가 에 오르자 문빙은 장안향후(長安鄕侯)와 가절(假節)을 받았다. 222년( 3년) , 등이 강릉성(江陵, 지금의 )을 별도로 (沔口)에서 오나라군을 막아 과 신야후(新野侯)에 올랐다. 226년 조비가 죽은 틈을 타 이 5만 명으로 석양(石陽)을 하기에 꿋꿋이 버텼다. 손권이 20여 만에 물러가는 것을 문빙이 추격하여 피해를 주었다. 이 500호가 늘어나 1,900호가 되었다. 강하를 수십 간 위엄과 인정으로 다스려 그 이 오나라에도 알려졌다. 는 장후(壯侯)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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