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휴
조휴(曹休, ? ~ 228년)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황족 · 장수로, 자는 문열(文烈)이며 예주(豫州)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조조(曹操)의 족자로, 진군(陳群) · 사마의(司馬懿) · 조진(曹眞)과 함께 조예 대의 고명대신이다.
출생~사망 174년 ~ 228년 10월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74년 ~ 228년 10월
- 출생
- 예주 패국 초현
- 사망
- 228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위나라
- 직업
- 장수
조휴(曹休, ? ~ 228년)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황족 · 장수로, 자는 문열(文烈)이며 예주(豫州)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조조(曹操)의 족자로, 진군(陳群) · 사마의(司馬懿) · 조진(曹眞)과 함께 조예 대의 고명대신이다.
행적
초기 경력
전란으로 인해 종족들이 흩어져 고향을 떠났으며, 10여 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한 객과 함께 임시로 장례를 치르고, 노모를 모시고 할아버지가 태수를 역임한 오군으로 이주했다. 조조가 거병하였을 때 성명을 바꾸고 형주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조조를 만났으며, 조조는 “이 자는 우리 집안의 천리마로다.”라 말하고 조비와 함께 머물게 하고 아들과 같이 대우했다. 호표기를 이끌었다.1
218년, 조조와 유비가 한중을 두고 다툴 때, 하변에 주둔한 오란을 공격하는 조홍의 군대에 기도위로 종군하여, 사실상 총지휘관이 되어 조홍의 군무를 맡았다. 장비가 오란을 지원하여 조홍 군의 배후를 끊으려 하자, 오란을 급히 공격하여 격파하여 장비를 달아나게 했다. 조조가 한중에서 철수한 후 중령군에 임명되었다.1
대오 전선 사령관
220년,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영군장군에 임명되었고 동양정후에 봉해졌다. 하후돈이 죽자 진남장군·가절·도독제군사가 되었다. 정동장군 · 영 양주자사로 승진하고 안양향후에 봉해졌다.1 이때 어머니를 잃었다.2
황초 3년(222년) 가을 9월, 정동대장군 · 가황월에 임명되어 장료, 장패와 함께 동구로 나아가 오나라를 쳤다. 조인은 유수를, 조진, 하후상, 장합, 서황은 남군을 공격했다. 손권은 주환에게 조인을, 에게 , 등을 지휘하게 하여 조휴, 장료, 장패를, , , 양찬에게 조진, 하후상, 장합, 서황을 막게 했다. 겨울 11월, 큰 바람이 불어 여범 등의 병사 수천 명이 익사했고, 조휴 등은 폭풍을 맞은 오나라 군대를 쳐 격파했다. 남은 오나라 군대는 장강 남쪽으로 건너와 아직 강을 건너지 않은 의 군대에 의지했다. 하제의 군대는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장하고 있었으며, 조휴 등은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러났다. 조휴는 오나라 군대와 대치하며 장패에게 서릉을 습격하게 하여 수천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으나, 서성의 군대를 공격하여 이기지 못했고, 을 공격하게 한 윤로는 패사했다. 원정은 황초 4년(223년) 조인의 패배로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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