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잠
배잠(裴潛, ? ~ 244년)은 중국 후한 말기, 삼국 시대 조위의 관료로, 자는 문행(文行)이다. 명문가인 하동 배씨(河東裴氏) 출신으로, 하동군 문희현(問喜縣) 사람이며 전농관의 천거 권한을 태수·국상과 같은 수준으로 올려, 농관(農官)의 승진 길을 넓혔다. 위왕 조예(魏王 曹叡)의 신임을 얻어 재상을 역임했고 말미에는 상국(相國)에 임명되었다. 위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문학가이며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正史 三國志)를 편찬한 조위의 정통 역사가로 알려져 있다. 대진(大晉) 상서령(尙書令) 배수(裴秀)의 아버지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4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연도 미상 ~ 244년
- 출생
- 하동군 문희현
- 사망
- 244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위
- 경력
- 재상, 상국
- 직업
- 관료, 역사가
배잠(裴潛, ? ~ 244년)은 중국 후한 말기, 삼국 시대 조위의 관료로, 자는 문행(文行)이다. 명문가인 하동 배씨(河東裴氏) 출신으로, 하동군 문희현(問喜縣) 사람이며 전농관의 천거 권한을 태수·국상과 같은 수준으로 올려, 농관(農官)의 승진 길을 넓혔다.
위왕 조예(魏王 曹叡)의 신임을 얻어 재상을 역임했고 말미에는 상국(相國)에 임명되었다.
위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문학가이며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正史 三國志)를 편찬한 조위의 정통 역사가로 알려져 있다.
행적
후한 말기의 전란을 피해 형주로 갔다. 유표는 빈객의 예로써 대우했다. 배잠은 친교를 맺은 왕찬·사마지에게 말했다.
그리고 남쪽 장사로 갔다. 건안 13년(208년), 조조는 형주를 평정한 후, 배잠을 참승상군사(參丞相軍事)로 임명했다. 배잠은 지방으로 나가 세 현의 현령을 역임했으며, 중앙으로 들어와 창조속(倉曹屬)으로 임명되었다. 조조가 배잠에게 물었다.
배잠이 말했다.
건안 20년(215년),1 대군이 크게 소란했으므로 배잠을 대군태수로 임명했다. 오환왕과 그 대인(大人) 세 명은 각자 선우라고 칭하고, 대군의 정사에 간섭하였다. 전임 태수가 그들을 바르게 다스릴 수 없었으므로, 조조는 배잠에게 정예병을 주어서 그들을 진무하고 토벌하게 하려고 했다. 배잠이 사양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수레 한 채를 타고 대군으로 부임하니, 선우들은 놀라며 기뻐했다. 배잠은 그들을 위로하고 진정시켰다. 선우 이하는 모자를 벗고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전후로 하여 약탈했던 부녀자, 기계, 그릇, 재물을 모두 돌려주었다. 배잠은 군내의 대관중 선우와 결탁한 군 내의 대관인 학온(郝溫)·곽단(郭端) 등 10여 명을 주살하였다. 북쪽 변방은 크게 떨었고 백성들은 그에게 귀의하였다. 대군에서 3년 재직하고, 건안 23년(218년), 중앙으로 돌아와 승상이조연(丞相理曹掾)이 되었다. 조조는 대군을 다스린 공을 칭찬하고 포상했다. 배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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