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군
회군(淮軍, huáijūn) 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을 진압하기 위해 증국번의 지시로 그의 제자였던 이홍장이 회하 유역(안휘 성)에서 조직한 의용부대를 말한다.
설립~해체 1862년 ~ 1894년 12월 3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회군(淮軍, huáijūn) 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을 진압하기 위해 증국번의 지시로 그의 제자였던 이홍장이 회하 유역(안휘 성)에서 조직한 의용부대를 말한다.
기원
1861년, 태평천국군이 난징의 본거지를 출발하여 상하이를 향해 진격하자 이를 수비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팔기군, 녹영)는 항거불능에 빠졌고, 구원하기 위한 영국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때 증국번은 양강총독을 맡고 있었고, 상군은 안휘성의 안칭에 주둔하고 있었다. 상하이의 관리들은 증국번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증국번은 상군의 제도를 이용해서 회하 지역의 장정을 훈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즉시 휘하의 유능한 참모였던 이홍장에게 안휘성 지역의 장정을 모병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1862년 3월 이홍장은 안칭에서 "회군"이라고 불리는 군대의 창설을 완료했다.
이홍장은 영국 기선에 회군을 태워 태평천국군의 점령지를 돌파하고 상하이에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영국군, 미국군과 함께 태평천국군을 진압하기 위한 합동작전을 폈다.
태평천국의 난 진압
회군은 창설 당시 6천500여명의 병력으로 조직되었다. 1862년 상하이에 도착한후 외국군의 지원을 받고, 상하이의 관세 수입으로 서양식 총과 대포를 구입하여 부대를 확대했다. 1864년까지 회군은 영국군, 프랑스군, 그리고 상승군과 서로 협동하여 상하이를 수비했고, 장쑤성에 있는 상군과 연합하여 저장성 각지에서 태평천국군과 교전했다.
태평천국의 수도인 천경이 함락된 후인 1864년 가을 회군은 일부가 소집해제되었으나 아직 104개 영(營)와 5만여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시 이홍장과 증국번의 지도하에서 청나라 군대의 주력이 되어 안휘, 후베이, 허난, 산둥, 장쑤, 허베이 등지에서 또다른 반란군인 염군과 교전하였다.
태평천국의 난 진압 이후
염군이 진압된 이후 회군은 북으로는 톈진, 바오딩, 남으로는 상하이, 우숭 등 남북간 천리간의 연안지구를 방어하였다. 이홍장은 회군을 세력기반으로 삼아 국가의 외교, 군사, 경제의 실권을 장악하였고 청나라 말기의 주요인사가 되었다. 회군의 주요 지휘관인 장수성, 주성파, 반정신, , , , , 등은 회계 군벌을 형성하여 주요한 청나라 말기의 유력한 군벌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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