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
호재(胡才, ? ~ ?)는 중국 후한 말의 장군이다. 본래 백파적이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황제 호위에 공을 세워 관직을 받았다.(헌제 탈출전) 중앙으로 진출하지 않고 하동군에 그대로 남았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197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1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연도 미상 ~ 197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중국
- 경력
- 백파적
- 직업
- 장군
호재(胡才, ? ~ ?)는 중국 후한 말의 장군이다. 본래 백파적이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황제 호위에 공을 세워 관직을 받았다.(헌제 탈출전) 중앙으로 진출하지 않고 하동군에 그대로 남았다.
생애
백파적(白波賊)이었다. 195년(흥평 2년) 11월(음력, 이하 모두 음력), 장안을 나와 동쪽으로 향하던 헌제 일행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이각, 곽사, 장제의 습격을 받았다. 이를 호위하던 흥의장군(興義將軍) 양봉과 안집장군(安集將軍) 동승은 큰 피해 끝에 간신히 조양간(曹陽澗)에 닿아서는 하동군에 있던 옛 백파적 이락, 한섬, 호재, 그리고 남흉노의 거비(去卑)1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에 힘을 합쳐 이각 등을 물리치고 수천 명을 참수하였다.
섣달, 다시 추격해온 이각 등에게 대패해 많은 이가 죽고 홍농군 섬현(陝縣)까지 내몰렸다. 호분(虎賁)과 우림(羽林)은 채 백 명도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십여 장(丈) 높이의 강안 절벽을 내려가더라도 야음을 틈타 황하를 건너기로 하였다. 혹자는 기어 내려오다가 혹자는 뛰어내리다가 죽거나 다쳤으며, 가까스로 내려온 자들은 저마다 배에 오르려 발버둥 쳤다. 동승과 이락이 매달린 손가락들을 내리쳐서야 배가 겨우 나아갈 수 있었다. 잘린 손가락들이 나뒹굴고, 동사하거나 익사한 이들도 허다하여 그 참혹함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비록 수십 인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침내 하동군 대양현(大陽縣)을 거쳐 안읍현(安邑縣)에 당도하였다. 하내태수 이 을, 하동태수 왕읍(王邑)이 을 공급하였다. 한섬·호재·이락은 모두 장군직에 가절(假節)을 받았으며 처럼 개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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