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락
이락(李樂, ? ~ ?)은 중국 후한 말의 장군이다. 본래 백파적이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황제 호위에 공을 세워 관직을 받았다. 중앙으로 진출하지 않고 하동군에 그대로 남았다.
출생 연도 미상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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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락(李樂, ? ~ ?)은 중국 후한 말의 장군이다. 본래 백파적이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황제 호위에 공을 세워 관직을 받았다. 중앙으로 진출하지 않고 하동군에 그대로 남았다.
생애
황제 구원에 나서
백파적(白波賊)이었다. 195년(흥평 2년) 11월(음력, 이하 모두 음력), 장안을 나와 동쪽으로 향하던 헌제 일행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이각, 곽사, 장제의 습격을 받았다. 이를 호위하던 흥의장군(興義將軍) 양봉과 안집장군(安集將軍) 동승은 큰 피해 끝에 간신히 조양간(曹陽澗)에 닿아서는 하동군에 있던 옛 백파적 이락, 한섬, 호재, 그리고 남흉노의 거비(去卑)1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에 힘을 합쳐 이각 등을 물리치고 수천 명을 참수하였다.
수운이냐 도강이냐
섣달, 다시 추격해온 이각 등에게 대패했다. 이락이 “사세가 급박하니 폐하께선 말에 오르셔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헌제는 “백관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 이들이 무슨 죄겠는가!”라 하였다. 많은 이가 죽고 홍농군 섬현(陝縣)까지 내몰렸다. 호분(虎賁)과 우림(羽林)은 채 백 명도 남지 않았는데 이각 등이 둘러싸고 함성을 지르니 관리와 병사들은 실색해 사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락이 두려워 황하에 배를 띄워 물길을 타고 지주(砥柱)를 지나 맹진(孟津, 盟津)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태위 양표가 “신은 홍농 사람입니다. 여기서부터 동쪽으로는 36개의 여울이 있어 천자가 갈 만하지 않습니다.”라 하였다. 종정(宗正) 유애(劉艾)도 “신은 전에 섬이어서 그 위험을 압니다. 예전부터 의 군사들이 있어도 위태로웠는데 하물며 지금은 군사도 없습니다.”라며 반대하였다. 이에 야음을 틈타 황하를 도하하기로 하고는 이락이 먼저 북쪽으로 건너가 선박을 구한 후 을 피워 신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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