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호
현석호(한국 한자: 玄錫虎, 1907년 5월 23일~ 1988년 12월 2일)는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외교관, 정치인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출생이며 본관은 연주(延州)이고 호는 석계(石溪)이다. 대한민국 제23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출생~사망 1907년 5월 23일 ~ 1988년 12월 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07년 5월 23일 ~ 1988년 12월 2일
- 임기
- 1960년 8월 23일 ~ 1960년 9월 12일
- 전임
- 이종찬
- 후임
- 권중돈
- 대통령
- 윤보선
- 총리
- 장면
- 임기
- 1960년 10월 13일 ~ 1960년 11월 20일
- 전임
- 김도연
- 후임
- 신현돈
- 임기
- 1961년 1월 30일 ~ 1961년 5월 18일
- 전임
- 권중돈
- 후임
- 장도영
- 출생일
- 1907년 5월 23일(1907-05-23)
- 사망일
- 1988년 12월 2일(1988-12-02)(81세)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학력
-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법학과,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 경력
- 자유당 상임위원 , 제3대 국회의원(예천군), 제5대 국회의원(예천군)
- 정당
- 무소속
- 본관
- 연주
현석호(한국 한자: 玄錫虎, 1907년 5월 23일~ 1988년 12월 2일1)는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외교관, 정치인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출생이며 본관은 연주(延州)이고 호는 석계(石溪)이다. 대한민국 제23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생애
경상북도 대구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 경성으로 유학, 경성제국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1933년)하여 경찰로 이력을 시작했고, 경부 직위에 오른 뒤 전라남도 화순군수가 되어(1936년), 황해도 산업과장(1938년), 충청남도 광업부장(1944년) 등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했다. 현석호는 충남 광업부장으로 재임 중에 일제가 패망하고 1945년 9월 중순 충남지사로 미군정 육군 대령이 부임하자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지사에게 "나는 일제에 협력한, 고급관리로서 일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답2 하고 이 내용을 회고록에 실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
광복 후, 미군정의 중앙경제위원회 기획관(1947년)을 거쳐 남선전기 부사장(1949년), 경성전기 전무취체역 (1951년)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고향인 예천군에서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1954년)되었다. 이후, 민주당 신파의 핵심 인물로서, 중앙당 조직부장(1956년)에 선임되었다. 1956년 8월 의 선거방해에 항의하여 , , , 등과 서울 태평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예천군에서 당선되었다.(1960년) 그리고, 에서 국방부-내무부-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던 중 을 맞아 장관직을 사임하였다.(1960년 5월 20일). 이후, 그는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뒤에는 , , , , 과 함께 민주당 재건에 참여(1963년)하였다. 가톨릭교리연구소 소장이 되어(1967년), 교리를 연구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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