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병춘
함병춘(咸秉春,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이자 외교관, 법학자이다. 한국의 법사회학을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제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의 아들이고, 25년 연상으로 농림부장관, 강원대학 학장을 지낸 함인섭의 이복 삼촌이다.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피폭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강릉(江陵), 아호는 창은(滄隱) 또는 고송(苦松)이다. 미국 유학 후 귀국, 1959년부터 70년, 1979년 10월부터 1983년 6월까지 연세대학교 법
출생~사망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
- 본명
- 함병춘
- 출생
- 1932년 2월 26일
- 사망
-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 산 묘역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경력
- 연세대학교 법학 교수,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외무부 본부대사, 대통령 외교담당 특보, 주미한국대사, 대통령 비서실장
- 직업
- 대학 교수, 외교관, 법학자
- 소속
- 연세대학교
- 위치
- 37.5600, 126.9900
목차
함병춘(咸秉春,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이자 외교관, 법학자이다. 한국의 법사회학을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제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의 아들이고, 25년 연상으로 농림부장관, 강원대학 학장을 지낸 함인섭의 이복 삼촌이다.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피폭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강릉(江陵), 아호는 창은(滄隱) 또는 고송(苦松)이다.
미국 유학 후 귀국, 1959년부터 70년, 1979년 10월부터 1983년 6월까지 연세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 강의하였으며, 한국 사회의 법사회학, 한국인의 법에 대한 태도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1970년 대통령 박정희의 요청으로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외무부 본부대사, 대통령 외교담당 특보를 역임했다. 1973년 12월부터 1977년 6월까지는 주미한국대사로 부임하였다. 다시 교단에 섰다가 1983년 대통령 전두환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으며, 그 해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10월 9일 버마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에 피폭되어 사망했다.
생애
출생과 초기 활동
1932년 2월 26일에 서울 연못골 연동목사 사택에서 태어났으며 함태영의 14남매 중 14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함태영은 두 번 상처하고 세번째 부인으로 고숙원과 재혼하였다. 아버지 함태영은 환갑이 넘어 그를 보았는데, 함태영은 20세가 되기 전 본처에게서 아들 함병석을 얻었고, 일찍 죽은 50여년 연상의 이복 형 함병석의 아들로, 함병춘보다 20년 연상인 이복 조카 함인섭, 함의섭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날 때는 4살 연상의 동복 친형 함병소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연동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고, 이후로도 계속 교회를 다녀 집사로 활동했다. 1943년 어머니 고숙원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셋방에서 사망하고 아버지 함태영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머니 사후 아버지 함태영이 직접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한다.1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 직후 에 장교로 입대하여 1952년 공군 중위로 예편하였다. 1953년 1월 미국으로 떠나 를 경제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59년에 에서 (S.J.D.)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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