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
태봉(泰封)은 후삼국을 이루던 나라로, 901년에 궁예가 송악을 도읍삼아 건국하였다. 초창기에는 고구려를 잇는 다는 뜻으로 국호를 후고구려라고 했으나 이후 철원으로 천도하여 국호를 마진, 마지막으로 태봉으로 바꾼어 완전히 태봉국으로 성립된다. 당시 후삼국의 절반에 달하는 영토를 차지하며 위세를 떨쳤으나 궁예가 불교의 미륵 신앙에 빠져 신정국가를 추구하고 폭정을 일삼아 결국 918년에 왕건의 역성혁명으로 축출되어 태봉은 멸망한다.
건국~멸망 901년 ~ 91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태봉(泰封)은 후삼국을 이루던 나라로, 901년에 궁예가 송악을 도읍삼아 건국하였다. 초창기에는 고구려를 잇는 다는 뜻으로 국호를 후고구려라고 했으나 이후 철원으로 천도하여 국호를 마진, 마지막으로 태봉으로 바꾼어 완전히 태봉국으로 성립된다. 당시 후삼국의 절반에 달하는 영토를 차지하며 위세를 떨쳤으나 궁예가 불교의 미륵 신앙에 빠져 신정국가를 추구하고 폭정을 일삼아 결국 918년에 왕건의 역성혁명으로 축출되어 태봉은 멸망한다.
역사
건국 이전
궁예는 892년 북원(北原)1의 적괴였던 양길의 부하가 되어 그의 신임을 얻고 강원도 각지를 공략하는 한편 수년 간 자기의 세력을 부식(扶植)하고 임진강 일대를 공취하여 차차 독자적 기반을 닦아 898년에는 송악군(宋岳郡 : 開成)에 웅거하여 자립의 기초를 세웠다.
고려(후고구려) 시기
이 무렵 왕건이 궁예의 휘하로 들어왔으므로 그에게 철원태수(鐵圓太守)의 벼슬을 주고 양길에게 대항하게 하여 그 땅을 빼앗고 901년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국호를 고려라 하였다. 후고구려라는 명칭은 고구려, 고려와의 구분을 위한 명칭이며, 이 당시 국호는 고려였다. 당시 궁예는 신라에게 망한 고구려를 대신하여 복수한다고 호언하며 서북지방의 인심을 모으려 하였다.
마진 시기
904년에는 국호를 '마진'(摩震)이라 하고 연호를 '무태'라 하였으며 신라의 관제를 참작하여 관제를 정하고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 새 국호 '마진'은 마하진단(摩訶震旦)의 약자이며, 마하는 산스크리트어로 '크다'는 뜻이고 진단은 중국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후에 '동방의 제국'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즉, 마진은 '대동방국'(大東方國)을 뜻하는 국호이다. 905년 국도(國都)를 철원으로 옮기고 성책(聖冊)이라 개원(改元)한다.
태봉 시기
911년 국호를 태봉이라 고치는 한편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 개원, 914년 다시 정개(政開)라고 고쳤다. 궁예는 철원을 중심으로 하여 강원·경기·의 대부분과 평안·의 일부를 점령함으로써 신라나 의 후백제보다도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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