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정치인)
최병렬(崔秉烈, 1938년 9월 16일 ~ 2022년 12월 2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공무원, 정치인이다. 그의 호는 우벽(祐碧)이다.
출생~사망 1938년 9월 16일 ~ 2022년 12월 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5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38년 9월 16일 ~ 2022년 12월 2일
- 사망
- 2022년 12월 2일(2022-12-02)(8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화순
-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문대학원 언론학 석사
- 경력
- 한국일보 기자, 조선일보 편집국장, 제12·14·15·16대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제18대 문화공보부 장관, 초대 공보처 장관, 제8대 노동부 장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제29대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부총재,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한나라당 상임고문, 새누리당 상임고문,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미래통합당 상임고문, 국민의힘 상임고문
- 배우자
- 백영자
- 자녀
- 최희준(아들)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 의원 선수
- 4
- 의원 대수
- 12·14·15·16
- 정당
- 국민의힘
- 위치
- 35.4694, 127.9434
최병렬(崔秉烈, 1938년 9월 16일 ~ 2022년 12월 2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공무원, 정치인이다.1 그의 호는 우벽(祐碧)이다.2
생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95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하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4년 뒤인 1963년 조선일보로 옮겨 기자 생활을 이어갔다. 1980년 편집국장으로 선임되었고 1983년에는 조선일보 이사에 선임되었다. 조선일보 이사로 근무하던 1985년 민주정의당의 공천을 받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1987년 열린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한 노태우 후보의 캠프에서 일하며 그의 당선에 기여했다. 민주정의당의 정책연구소 정세분석실장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2월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정무수석비서관 재임 시기 전두환을 비롯한 5공화국 인사들의 정치적 단죄를 주도하였으며, 5공 청문회를 개최하여 전두환을 국회로 소환하였다. 노태우 정부 하에서 문화공보부 장관, 국정홍보처 장관, 노동부 장관을 잇따라 역임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후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캠프로 들어가며 상도동계에 편입되었다. 3당 합당 이후 YS의 측근이 된 이들을 '신민주계' 로 부른다. 김영삼 후보는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94년 11월 서울특별시장으로 임명되며 마지막 관선직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이듬 해 6월 첫 선출직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1995년 6월 30일 퇴임하였으며, 퇴임 하루 전인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하여 조순 서울시장 당선인과 함께 현장을 찾아 구조상황을 점검하고 진두지휘하였다. 서울시장 사퇴 이듬 해인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초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국회에 재입성하였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한국당 경선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6위로 낙선하였다. 낙선 이후 캠프에서 활동하였으나,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낙선하면서 한나라당은 야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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