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지원군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 중국어 간체자: 中国人民志愿军, 병음: Zhōngguó Rénmín Zhìyuàn Jūn 중궈런민즈위안쥔[*], 영어: People's Volunteer Army, PVA)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다. 대한민국에서는 중국공산당의 군대라는 의미로 중공군(中共軍)이라고 표기하지만, 당시 신생 공산 국가였던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사령부와 공식적인 전쟁을 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규군인 중국 인민해방군과는 다른 직제와 편제를 가졌다. 공식
설립~해체 1950년 10월 ~ 195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문서 정보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 중국어 간체자: 中国人民志愿军, 병음: Zhōngguó Rénmín Zhìyuàn Jūn 중궈런민즈위안쥔[*], 영어: People's Volunteer Army, PVA)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다. 대한민국에서는 중국공산당의 군대라는 의미로 중공군(中共軍)이라고 표기하지만, 당시 신생 공산 국가였던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사령부와 공식적인 전쟁을 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규군인 중국 인민해방군과는 다른 직제와 편제를 가졌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지원병"인 것처럼 꾸몄으나 사실상 만주에 주둔했던 인민해방군의 제4야전군이 이름만 바꾸어 참전하였다. 총 37개 군대, 113개 사단이 참전했다.
개요
배경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30분 6.25 전쟁이 발발하고 계속 밀리던 한국군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군이 참전하고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서울을 수복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불법으로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여 38선을 넘으면 군대를 북한에 보낸다고 경고하였으나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 계속 북상하여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 근처 중국 국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때 미군이 압록강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많은 공산당 사상자가 나오게 된다. 그때 마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강계시를 임시 수도로 정하고 비굴하게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등 몇몇 서방 인물들은 전세를 중국과 까지 확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은 참전의 빌미를 준다고 생각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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