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 (1361년)
정진(鄭津, 1361년 ~ 1427년)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으로 시호는 희절공(僖節公)이며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관직에 올라 사재감령, 전농감령 등을 거쳐 조선 건국 후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398년(태조 7년) 아버지 정도전이 요동 정벌 계획 중 태종 이방원에게 피살되자 수군 병력으로 충군되었으나 조준, 권근 등의 건의로 복직하여 자헌대부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사후 의정부우찬성에 증직되었으며, 아버지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을 최초로 간행하였다. 경기도 출신으로 본관은 봉화.
출생~사망 1361년 ~ 1427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361년 ~ 1427년
- 본명
- 정진
- 출생
- 1361년, 경기도
- 사망
- 1427년
- 성별
- 남성
- 국적
- 고려, 조선
- 경력
- 사재감령, 전농감령, 형조판서
- 직업
- 문신, 정치인
- 활동 기간
- 고려 말 ~ 조선 초
- 병역
- 수군 병력 충군
- 상훈
- 개국원종공신
정진(鄭津, 1361년 ~ 1427년)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으로 시호는 희절공(僖節公)이며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관직에 올라 사재감령, 전농감령 등을 거쳐 조선 건국 후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398년(태조 7년) 아버지 정도전이 요동 정벌 계획 중 태종 이방원에게 피살되자 수군 병력으로 충군되었으나 조준, 권근 등의 건의로 복직하여 자헌대부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사후 의정부우찬성에 증직되었으며, 아버지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을 최초로 간행하였다. 경기도 출신으로 본관은 봉화.
생애
생애 초기
정진은 1361년 정도전과 경숙택주 경주최씨의 네 아들 중 첫째 아들로 개경(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관직에 올라 1382년 낭장(郞將)이 되고 이후 사재감령, 전농감령 등을 지냈다.
공양왕 즉위 후 1391년 정몽주(鄭夢周) 등 온건파가 역성혁명파를 탄핵할 때 탄핵을 받고 아버지 정도전과 함께 파직당하고 유배되었다.
조선 건국
1392년 7월 조선왕조가 건국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고 공신의 적자로 외직을 자청하여 부사(延安府使)가 되었다. 연안부사 재직 시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1393년 판사재감사를 지내고, 1396년(태조 5년) 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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