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1574년)
이훈(李薰) 선조 7년(1574) 갑술년 ∼ 인조 2년(1624) 2월 11일 조선중기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효재(孝哉). 조부는 덕연부원군 이정(李貞)이며,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4남으로 해주오씨(海州吳氏) 소생이다. 무과.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출생~사망 1574년 ~ 1624년 2월 1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이훈(李薰) 선조 7년(1574) 갑술년 ∼ 인조 2년(1624) 2월 11일 조선중기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효재(孝哉). 조부는 덕연부원군 이정(李貞)이며,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4남으로 해주오씨(海州吳氏) 소생이다. 무과.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생애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자 이순신 휘하에서 종군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란이 끝나고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일어나 종군 중 2월11일 안현전투(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향년 50세로 전사하였다.
배위는 증 숙부인 순천김씨로 아버지는 김춘여이시다. 광해 2년(1610) 경술년 3월20일 별세. 슬하에 이지구(李之龜, 字良寶) 1남이 있다.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평가
충무공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자식들과 조카의 전투수행 과정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다만 형인 이회(李薈)와 종형제인 이봉(李菶)과 이해(李荄)가 왜란 후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노량해전 기록을 보았을 때 대장선에 자식들과 조카들이 승선하여 전투에 참여한 기록이 있는 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일어나 종군 중 2월11일 안현전투(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전사한 바 충무공 이순신과 같이 용맹하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무관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정조 연간에는 정조가 주도적으로 나서 왜적과 싸운 위인들을 추숭하였는데, 이 과정에 이순신의 아들들이 순사하였지만 정려와 증직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정조는 이면, 이훈, 이신을 정려하기 위해 여러차례 논의를 주도하고 이훈을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증직하였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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