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송
이여송(李如松, 1549년 ~ 1598년)은 명나라 말기의 장수로 임진왜란 때 파견된 명나라 장군의 한사람으로 요동(遼東) 철령위(鐵嶺衛) 출생이다. 조선계이며 본관은 성주 이씨라고 전한다. 후일에 농서 이씨(隴西李氏)의 시조가 되었다.
출생~사망 1549년 ~ 159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0
이여송(李如松, 1549년 ~ 1598년)은 명나라 말기의 장수로 임진왜란 때 파견된 명나라 장군의 한사람으로 요동(遼東) 철령위(鐵嶺衛) 출생이다. 조선계이며 본관은 성주 이씨라고 전한다. 후일에 농서 이씨(隴西李氏)의 시조가 되었다.
생애
임진왜란 이전
명나라로 귀화한 조선인 출신의 명나라 요동총병관(遼東總兵官) 이성량(李成梁)의 아들로서 이영(李英)의 5대손이다. 이영은 이천년(李千年, 이조년의 친형)의 아들 이승경(李承慶)이 원나라에서 벼슬한 까닭으로 이영이 원나라에 정착해 명이 세워진 후에도 대대로 살게 되었다.
이여송의 계보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이장경-이천년-이승경-이영-이문빈-이춘미-이경-이성량-이여송
이여송은 닝샤(영하:寧夏)에서 발배(틋拜)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동정제독(東征提督)으로서 이를 평정하여 장수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상당한 덕장이었는데 부하 장수인 이유승이 군법을 어기고 기생과 연애를 하고 있었음에도 참수를 하지 않고 용서해줬으며 그 이후 이유승이 그 기생과 결혼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
임진왜란
1592년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간쑤성(甘肅省) 닝샤(寧夏)에서 반란을 평정하고 명나라의 제2차 원군으로 방해어왜총병관(防海禦倭總兵官)으로 부하 천만리(千萬里), 이여백(李如柏), 추수경(秋水鏡) 등과 4만 3천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여송은 조선의 보급 문제로 인해 군마를 잃은 뒤 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도와주러 왔다는 원군을 제대로 돕지 못했다며 갖가지 횡포를 자행하면서 정작 일본군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 분개한 (柳成龍)과 (李恒福), (李德馨)은 이여송에게 트집을 잡아 제대로 싸울 것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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