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윤
이범윤(李範允, 1856년 12월 29일(1856-12-29) ~ 1940년 10월 20일(1940-10-20))은 구한말 복벽주의 성향 독립운동가였다. 연해주에서 무장 독립군을 조직하여 국내침공작전을 추진했던 그는 대한제국에서 변계경무서 예하 북변간도관리사 직책을 지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출생~사망 1863년 12월 29일 ~ 1940년 10월 2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1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63년 12월 29일 ~ 1940년 10월 20일
- 임기
- 1903년 5월 3일 ~ 1905년 12월 22일
- 섭정
- 총리대신 이근명(前)
- 출생일
- 1856년 12월 29일(1856-12-29)
- 사망일
- 1940년 10월 20일(1940-10-20)(83세)
- 국적
- 대한제국
- 학력
- 한학 수학
- 정당
- 무소속
- 본관
- 전주(全州)
- 형제자매
- 이범익(배다른 적형) , 이범온(배다른 서제)
- 친인척
- 이인상(백조부) , 이인달(친조부) , 이원하(백부) , 이범욱(6촌 재종형) , 이범오(6촌 재종형) , 이범진(6촌 재종형) , 이범중(6촌 재종형) , 이범택(6촌 재종형) , 이위종(7촌 재종조카)
- 종교
- 무종교
- 웹사이트
- 공훈전자 사료관 "이범윤"
- 상훈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년)
이범윤(李範允, 1856년 12월 29일(1856-12-29) ~ 1940년 10월 20일(1940-10-20))은 구한말 복벽주의 성향 독립운동가였다. 연해주에서 무장 독립군을 조직하여 국내침공작전을 추진했던 그는 대한제국에서 변계경무서 예하 북변간도관리사 직책을 지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출생과 성장
무위대장을 지낸 조선 말기의 무관(武官) 출신인 이경하(李景夏)의 아들로서 1856년 12월 29일 경기도 고양군(현재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출생했다. 구한말의 정치인 겸 외교관을 지낸 이범진(李範晋)의 6촌 재종 아우이며 구한말의 외교관을 지낸 이위종(李瑋鍾)의 친가 7촌 재종 숙부이다. 한때 경기도 양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훗날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1875년부터 1880년까지 5년간 청나라 만주 연길에 체재한 그는 1887년 음서 천거로써 관료가 되어 이후 구한 말 간도 문제로 청나라와의 갈등 끝에 변계경무서가 설치된 뒤 1902년 간도시찰(間島視察)로 임명되기까지의 경력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직
그는 간도로 파견되었고, 이듬해(1903년)에는 간도관리사로 임명되어 간도 지역 조선인에 대한 행정 업무를 전담하였다. 이범윤은 이 지역의 포수들로 자위적 성격의 군대인 사포대를 조직하였는데, 이 사포대가 향후 간도 지역 의병운동의 한 기반이 되었다.
간도관리사로 재직 중이던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러시아 군대와 연대하여 함경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1906년 이범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러시아령으로 망명했다.
독립 운동
이 지역에 이미 이민해 와 있었던 거부 최재형의 도움으로 의병 부대(연추의병부대)가 조직되었으며,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의병 지원을 위한 동의회(총장 최재형)와 창의회를 결성하고 연추의병부대 총독에 취임했다. 과 엄의섭 등이 참가한 연추의병부대는 러시아령에 머물면서 수 차례 국내에 진입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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