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친왕
완친왕(完親王, 1868년 5월 31일 ~ 1880년 1월 12일)은 완화군(完和君)으로 대한제국의 추존 친왕이다.
출생~사망 1868년 5월 31일 ~ 1880년 1월 1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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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친왕(完親王, 1868년 5월 31일 ~ 1880년 1월 12일)은 완화군(完和君)으로 대한제국의 추존 친왕이다.
생애
완친왕(完親王)의 성(姓)은 이(李)이고 본관은 전주로 이름은 선(墡)이다. 1868년(고종 5) 운현궁 회죽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고종이고 모친은 명성황후이며 사친은 영보당 귀인 이씨이다.
완친왕은 포대기에 싸여 있는 아기 때부터 조모 신정익황후 조씨가 거두어 키웠다.1 1870년(고종 7) 고종의 사친 헌의대원왕(흥선대원군)의 주도로 『교학정례(敎學定例)』가 편찬되었다. 대군과 군의 교관을 왕자 사부(王子 師傅)라 하고 담당 기구를 강학청(講學廳)이라 하였다.2 1876년(고종 13) 4월 완화군(完和君)으로 봉작되고 영종정경(領宗正卿)에 임명되었다. 5월 궁궐 밖 에 제택(第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3 12월 종친부의 건의로 고종이 절목을 마련하였다. 완화군의 강학일기는 1876년(고종 13)부터 1879년(고종 16)까지 기록되었다. 강학은 자주 열리지 않았고 책은 소학 5권에서 그쳤다.4 1877년(고종 14) 관례(冠禮)를 행하였다.5
1880년(고종 17) 1월 6일 두질(痘症·천연두) 증상이 나타났고 1월 12일 축시(새벽 1 - 3시)에 궁중 내 15문 장방으로 옮겼다. 인시(새벽 3 - 5시)에 재동 완화군궁 대사랑채 동쪽 온돌방으로 이동했으나 향년 1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6
사후
사망 다음 날 '효헌(孝憲)’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7 1907년(융희 1) 완효헌왕(完孝憲王)으로 추봉되었다. 완왕(完王)·완친왕(完親王)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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