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휴
오 경황제 손휴(吳 景皇帝 중국어: 孫休, 병음: Sūn Xiū 쑨 시우[*], 235년 ~ 264년, 재위 258년 ~ 264년)는 오의 제3대 황제로, 자는 자열(子烈)이다. 손권(孫權)의 여섯 번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희황후 왕씨(敬憘皇后 王氏)이다.
출생~사망 235년 ~ 264년 9월 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오 경황제 손휴(吳 景皇帝 중국어: 孫休, 병음: Sūn Xiū 쑨 시우[*], 235년 ~ 264년, 재위 258년 ~ 264년)는 오의 제3대 황제로, 자는 자열(子烈)이다. 손권(孫權)의 여섯 번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희황후 왕씨(敬憘皇后 王氏)이다.
즉위 전
13세에, 중서랑(中書郞) 사자(射慈)와 낭중(郞中) 성충(盛沖)에게 학문을 배웠다.1
태원 2년(252년) 정월, 형 폐태자 손화(孫和)가 남양왕(南陽王)에 임명되고, 손분(孫奮)이 제왕(齊王)에 임명될 때, 낭야왕(琅邪王)의 작위를 받고 호림(虎林)에 거주했다.2 이해 4월에 손권이 죽고 폐제 손량(孫亮)가 즉위한 후, 제갈각(諸葛恪)이 왕자들을 강가의 요충지에 두지 않고자 하여 손휴를 단양(丹陽)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양태수(丹陽太守) 이형(李衡)의 침해를 받았으므로 글을 올려 다른 군으로 옮기기를 구해, 조서로써 회계(會稽)로 옮겼다.1 회계태수(會稽太守) 복양흥(濮陽興)과 친교를 맺었다.3
즉위 후
태평 3년(서기 258년) 10월, 손침(孫綝)은 폐제를 쫓아내고, 낭야왕을 황제로 세우고자 종정 손해와 중서랑 동조에게 낭야왕을 맞이하게 했다. 낭야왕은 처음에는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손해와 동조의 설득을 받아들여 마침내 따라가 10월 18일에 즉위했다. 경제는 즉위 후 대사면을 실시하고, 연호를 영안으로 고쳤다. 이후, 손오의 황제로서는 유일하게 재위 기간에 연호를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 또 손침을 승상·대장군에 임명하고, 손침의 네 동생을, 얼마 지나지 않아 손화의 세 아들을 모두 후로 삼았다. 이형은 경제가 즉위하자 두려워해 달아났는데, 복직시켰다. 손침과 그 네 아우의 권력이 심히 커 군주를 흔들 지경이었으므로, 경제는 두려워하여 자주 상을 주었다. 오래지 않아 손침이 역모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므로, 12월 8일에 경제는 심복인 좌장군 장포(張布)와 모의하여 손침을 주살하고 그 삼족을 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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