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
등애(鄧艾, 197년 ~ 264년)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장군이며, 자는 사재(士載)로, 의양군(義陽郡) 극양현(棘陽縣) 사람이다.
출생~사망 197년 ~ 26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등애(鄧艾, 197년12 ~ 264년)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장군이며, 자는 사재(士載)로, 의양군(義陽郡) 극양현(棘陽縣) 사람이다.
생애
생애 전반기
등애는 부모를 일찍 잃고 여남(汝南)에서 송아지를 길렀다. 지형을 살피고 그림을 그리면서 군사작전에 적합한지를 연구하기를 좋아했으나 말더듬이여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이후 상계리(上計吏)를 지낼 때 사마의(司馬懿)를 만나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이후 수춘(壽春)을 시찰하던 등애는 운하를 통해 물을 끌어들일 구상을 하고 <제하론(濟河論)>을 지어 사마의에게 바쳤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운하가 완성된 후 수해가 줄고 군사들과 식량을 보내기가 편리해졌다.
조모(曹髦)가 등극한 후 방성정후(方城亭侯)에 봉해졌다. 251년에는 조정에 글을 올려 남흉노의 세력을 둘로 나누어 그들의 힘을 약하게 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255년 관구검(毌丘倹)이 문흠(文欽)과 함께 반 사마씨 봉기를 일으키자, 당시 연주자사였던 등애는 군사 만여 명을 이끌고 낙가성(樂嘉城)을 점거하여 문흠을 유인했다. 문흠은 자신의 군사가 더 많다고 여기고 낙가성으로 쳐들어왔으나 이미 사마사(司馬師)의 대군이 당도해 있었기에 끝내 패주했다. 등애는 문흠을 끝까지 추격하여 오나라로 달아나게 했다. 반 사마씨 봉기가 진압된 후 공로를 인정받아 안서장군(安西將軍)을 대행하고 방성향후(方城鄕侯)가 되었다.
북벌 방어
249년 강유(姜維)가 국산(麴山)에 성을 쌓고 구안(句安)과 이흠(李歆)에게 지키게 하자, 등애는 곽회(郭淮)의 지시대로 성 부근의 물줄기를 끊어 성 안의 촉군이 항복하게 만들었다. 강유는 요화(廖化)를 보내 등애를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조성(洮城)을 공격하려 했으나, 이를 눈치챈 등애가 먼저 조성에 도착해 강유가 이끈 촉군을 무찔렀다. 이 공으로 토구장군(討寇將軍)으로 임명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255년 강유가 왕경(王經)을 대패시키고 적도(狄道)를 포위하자, 재빨리 적도로 이동하여 포위가 풀어지게 한 공으로 안서장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유가 다시 쳐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등애는 방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가 얼마 후 쳐들어온 를 상대로 단곡(段谷)에서 승리했다. 위나라 조정에서는 등애를 등후(鄧侯)로 봉하고, 진서장군(鎭西將軍)으로 승진시키고 도독농우제군사(都督隴右諸軍事)를 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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