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전투
사천성 전투(泗川城戰鬪)는 1598년 10월, 조선 경상도 사천 사천선진리성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인솔하는 일본군 7천 명이 약 4만 명의 조명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시작~종료 1598년 11월 6일 ~ 1598년 11월 1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7
사천성 전투(泗川城戰鬪)는 1598년 10월, 조선 경상도 사천 사천선진리성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인솔하는 일본군 7천 명이 약 4만 명의 조명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1
배경
1598년 9월 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조·명 연합군은 서로군·중로군·동로군을 편성하여 서쪽에서 순천왜성(고니시군), 사천 선진리왜성(시마즈군), 울산왜성(가토군)에 대해서 동시에 남진하였고, 육상의 삼로군과 수로군을 동시에 병진하게 하여 일본군을 공격한다는 '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에 돌입했다.
이 삼로군 중 명나라 장수 동일원이 인솔하는 중로군 4만 명의 조·명 연합군이 시마즈군이 주둔하는 사천으로 남진해 들어갔다. 사천은 일본군의 근원지인 부산과 일본군 왼쪽 끝의 순천왜성과 남해왜성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이곳을 함락시키면 서쪽으로 있는 일본군과의 연락이 분단될 위험이 있었다.
당시 사천일대의 일본군은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를 주축으로 한 시마즈 가문의 5개 부대가 다소 느슨한 지휘체계로 결합해 있었다. 1597년 시마즈 요시히로는 모리 가쓰노부가 축성한 사천 선진리왜성에 주둔하며 사천에서 진주에 이르는 요해(要害)에 진영을 설치하는 한편, 진주성에 미하라 시게다네(三原重鍾)를 주둔시키고 망진왜성에는 중로군이 남강을 건너 남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데라야마 히사가네(寺山久兼)로 하여금 수비를 담당시켰다. 또한, 영춘과 사천에 성을 축조·보수하여 영춘왜성과 사천구성에는 가와카미 히사토모(川上久智)와 가와카미 다다자네(川上忠実)로 하여금 각각 수비하게 하여 을 최전 방위선으로 삼고 또 망진왜성·영춘왜성·사천구성의 3성을 사천 선진리왜성의 전진 방어진지로 삼고 있었다. 시마즈군의 병력은 시마즈 요시히로와 요시히로의 아들 (島津忠恒)가 인솔하는 7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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