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회의
빈 회의(독일어: der Wiener Kongress)는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주도하에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이 모여 한 회의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열렸기에 빈 회의라고 한다.
시작~종료 1815년 ~ 1815년 6월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빈 회의(독일어: der Wiener Kongress)는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주도하에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이 모여 한 회의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열렸기에 빈 회의라고 한다.
개요
1814년 9월 1일에서 1815년 6월 9일까지 열린 이 회의의 목적은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을 수습하고, 유럽의 상태를 전쟁 전으로 돌리는 것이 목표였다. 즉 프랑스 혁명 이전의 유럽의 왕정 체제를 다시 보수하고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유럽의 기존 체제를 위협할 일을 예방하기 위해 프랑스가 다시 강국이 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도 빈 회의의 중요한 목표였다.(그러나 승전 4개국의 분열과 프랑스 외무상 탈레랑의 활약으로 이러한 목표는 잘 달성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반동·보수적 성격을 가진 회의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 빈 체제 혹은 유럽 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였다. 결론적으로 빈 체제는 빈 회의의 결과 만들어진 유럽의 반동적 체제를 의미한다. 여기서 반동이란 역사의 진보를 역행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빈 회의에서는 프랑스 혁명으로 몰락한 부르봉 왕가를 프랑스와 에스파냐에 복귀시키는 등 왕정이 몰락한 곳에 다시 왕정을 부활시키고,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유럽 열강들은 소위 세력 균형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빈 체제의 또다른 성격이다. 빈 회의의 결과로 형성된 빈 체제는 19세기 중엽까지 유럽 정치의 큰 틀이 된다.
대표자
상술된 바와 같이, 회의는 5대 강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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