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 전투(보제 전투, 영: Battle of Baugé, 프: Bataille de Baugé)는 1421년 프랑스 서부의 보제(현 메인에루아르 도)에서 벌어진, 프랑스 왕국·스코틀랜드 왕국 연합군과 잉글랜드 왕국군의 전투이다. 백년전쟁 중 잉글랜드군이 입은 주요 패배 가운데 하나로,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의 동생 클래런스 공 토머스 오브 랭커스터가 전사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원정군을 이끌고 프랑스에 건너온 헨리 5세 역시 이듬해 전염병에 걸려 병사하였고, 백년전쟁의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배경
1415년 잉글랜드 왕 헨리 5세는 1만의 병력을 이끌고 프랑스에 상륙했고, 2개월 뒤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했다.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은 부르고뉴파는 이를 틈타 파리를 장악했으며, 1417년 재상륙한 잉글랜드군은 북부의 도시 루앙을 함락시켰고 노르망디 역시 잉글랜드의 손에 들어갔다12.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아르마냑파와 친영 성향의 부르고뉴파는 내전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프랑스의 왕태자(도팽) 샤를(후의 샤를 7세)은 1419년 스코틀랜드 왕국에 도움을 청했다. 1295년부터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있던 스코틀랜드3는 버컨 백작 존 스튜어트가 이끄는 원군을 보냈고, 스코틀랜드군은 왕태자군의 중추가 되어 하루아르 계곡 지방의 방어를 맡았다4.
헨리 5세는 1421년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자신의 추정 상속인인 동생 클래런스 공 토머스 오브 랭커스터를 프랑스 주둔군 사령관으로 남겨 두었다. 클래런스 공은 형의 지시에 따라 4천의 병력을 이끌고 앙주와 메인 주변에서 기병 습격(Chevauchée, 기병으로 적지 깊숙이 침입하여 약탈과 파괴를 행하는 잉글랜드군의 전술)을 감행했으나5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고, 보제 근교에서 야영했다. 이때 버컨 백작과 프랑스 원수 질베르 모티에 드 라파예트가 이끄는 약 5천의 프랑스·스코틀랜드군 역시 잉글랜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보제 부근까지 진출해 있었다. 약탈을 위해 주변을 뒤지던 잉글랜드 궁병의 일부대가 스코틀랜드 기사를 사로잡아 클래런스 공 앞에 끌고 왔다. 클래런스 공은 즉시 전투를 시작하려 했으나, 다음 날은 기독교의 중요한 축일 가운데 하나인 부활절 일요일이었기 때문에46 양군의 지휘관은 부활절 기간의 휴전에 합의했다7.
전투
클래런스 공은 프랑스·스코틀랜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기습으로 단숨에 결판을 내려 했으며, 진형을 정비해야 한다는 부관의 의견을 물리치고 3월 22일 휘하의 중무장 병사 1500명만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약탈을 위해 흩어져 있던 궁병들을 신속히 모아 뒤따르도록 솔즈베리 백작에게 명령해 두었으나, 자신이 이끄는 부대에는 궁병의 지원이 없는 상태였다.
양군 사이에는 다리가 있었고, 이를 건너려는 잉글랜드 병사와 밀어내려는 스코틀랜드 병사 사이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약 100명의 스코틀랜드 궁병은 버컨 백작이 전군을 다리로 보낼 때까지 끈질기게 반격했고, 잉글랜드 중무장 병사들의 공격을 버텨냈다48. 클래런스 공이 이끄는 잉글랜드 병사들은 적 궁병의 반격으로 수가 줄었고, 간신히 다리를 건넌 곳에서 연합군의 주력과 마주쳤다. 난전 중 창에 찔려 낙마한 클래런스 공은 적병에게 목숨을 잃었다24. 적장을 죽인 것이 스코틀랜드 병사인지 프랑스 병사인지는 여러 설이 있다9. 흩어진 궁병들을 모으는 데 성공한 솔즈베리 백작은 오후가 되어 전장에 도착했고, 패잔병을 구출함과 동시에 클래런스 공 등의 시신을 수습했다10. 잉글랜드 귀족 엑서터 공과 서머싯 백작 형제는 포로가 되었다.
전후
프랑스·스코틀랜드군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잉글랜드군은 프랑스 주둔군 사령관이자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인 클래런스 공이 살해되었고 많은 귀족을 잃었으나, 솔즈베리 백작이 능숙하게 퇴각전을 지휘한 덕분에 궤멸되지 않고 철수했다10.
헨리 5세는 전년에 결혼한 왕비 캐서린 오브 발루아의 대관식을 마치고 잉글랜드 북부를 여행하던 중 보제의 패전과 동생의 죽음을 전해 듣고, 4천에서 5천의 병력을 이끌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1421년 6월 10일 영불 해협에 면한 칼레에 상륙한 그는 파리로 향하기 전에 샤를 왕태자 측 도시들의 공략에 착수했다. 파리 동쪽의 견고하게 요새화된 왕태자 측 도시 모의 공성전은 7개월에 걸쳐 이어졌고, 1422년 5월에 이르러서야 함락시켰으나, 이후 이어진 군사 행동 중 8월에 헨리 5세는 병사했다. 사인은 이질로 알려져 있다2.
헨리 5세의 사망 이후 섭정인 베드퍼드 공이 계속 지휘를 맡아 백년전쟁은 이어졌고, 잉글랜드군은 대륙에서 승리를 거듭했다. 보제에서 잉글랜드군이 패배한 원인은 클래런스 공이 궁병의 지원 없이 돌격한 데 있었으나, 1424년 8월의 베르뇌유 전투에서는 잉글랜드 궁병이 효과적으로 활약하여 샤를 왕태자의 프랑스군을 궤멸시켰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는 같은 해 귀국해 왕좌에 올랐으나, 프랑스에 대한 원군 파견에는 이제 소극적이 되어 있었다111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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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