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로
변영로(卞榮魯, 1898년 6월 27일 ~ 1961년 3월 14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동아일보 기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등을 역임한 영문학자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형은 법조인 변영만(卞榮晩)과 국무총리를 지낸 변영태(卞榮泰)이다. 본명은 변영복(卞榮福)이었으나, 나중에는 영로(榮魯)라는 이름을 주로 썼고, 61세가 되던 1958년이 되어서야 변영로로 정식 개명하였다. 호는 수주(樹州)이다.
출생~사망 1898년 ~ 1961년 3월 14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8년 ~ 1961년 3월 14일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미국 새너제이 주립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 필명
- 아명(兒名) 변영복(卞榮福), 호(號) 수주(樹州)
- 활동기간
- 1914년 ~ 1960년 2월 29일
- 장르
- 시문학, 영문학, 수필, 번역, 평론
- 수상
- 1948년 제1회 서울시문화상
- 부모
- 변정상(부), 진주 강씨 부인(모)
- 배우자
- 초배 이흥순(李興順), 계배 양창희(梁昌姬)
- 자녀
- 슬하 2남 3녀, (그 중 장남 변공수, 차남 변문수)
- 친지
- 변해영(조부)
- 위치
- 37.5600, 126.9900
변영로(卞榮魯, 1898년1 6월 27일(음력 5월 9일) ~ 1961년 3월 14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동아일보 기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등을 역임한 영문학자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형은 법조인 변영만(卞榮晩)과 국무총리를 지낸 변영태(卞榮泰)이다. 본명은 변영복(卞榮福)이었으나, 나중에는 영로(榮魯)라는 이름을 주로 썼고, 61세가 되던 1958년이 되어서야 변영로로 정식 개명하였다. 호는 수주(樹州)이다.
생애
원적지였던 경기도 부평도호부 하오정면 고리동(지금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313번지)이며, 한성부 남서 회현방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재동·계동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사립 중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2년 자퇴하고, 1915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
1918년 『청춘(靑春)』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에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였다. 1920년에 《폐허(廢墟)》, 1921년에는 《장미촌(薔薇村)》 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신민공론(新民公論)』 주필을 지냈다. 신문학 초창기에 등장한 신시의 선구자로서, 압축된 시구 속에 서정과 상징을 담은 기교를 보였다. 민족 의식을 시로 표현하고 수필에도 재능이 있었다.
192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중퇴하였다.
1933년 동아일보 기자, 1934년 『신가정(新家庭)』 주간을 지내다 광복 뒤 1946년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1950년에 해군사관학교 영어교관을 역임하였다. 1951년 제2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53년에 대한공론사(大韓公論社) 이사장에 취임하여 영자 일간지를 발간하였다. 1955년 제1대 한국 펜클럽 회장에 선출되어 제27차 비엔나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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