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찬
민영찬(閔泳瓚, 1873년 12월 3일 ~ 1948년 11월 16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여흥, 자(字)는 국보(國寶)이다.
출생~사망 1873년 ~ 1948년 11월 16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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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찬(閔泳瓚, 1873년 12월 3일(1873-12-03) ~ 1948년 11월 16일(1948-11-1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여흥, 자(字)는 국보(國寶)이다.
생애
여흥 민씨 세도가의 실세였다가 임오군란 때 피살된 민겸호의 차남으로 민영환이 그의 형이다. 고종의 생모이자 흥선대원군의 처 여흥부대부인 민씨는 그의 고모이다. 둘째 큰 아버지인 민승호가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에게 입적되었기에 민영환과 민영찬 형제를 명성황후의 조카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입적이란 친부모형제와의 법적 관계가 절연되는 것이기에 민승호가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되었어도 명성황후와 이들 형제의 관계는 여전히 13촌 먼 친척에 불과하다.
한 살 차이로 같은 또래인 순종 이척 등과 어릴 때 함께 공부한 그는, 1889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890년 과거 알성시에 합격해 홍문관에서 관직을 시작해 요직에 근무했다. 1897년에는 한성은행 총무부 차장을 거쳐 같은 해 한성은행 부은행장에 초고속 진급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1898년 "역관 김홍륙의 독다 커피 관련 음모 조작 사건 최고 배후 수괴"로써 훗날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출신 한성재판소 판사 함태영(훗날 대한민국 심계원장·대한민국 부통령 역임)에게 "대한제국 민본주의 황실과 고종·순종 부자를 사실상 핍박하고자 상궁들에게 독다 커피를 뿌리고 증거 불태우고자 그들 상궁들도 참살하는 등 공공연히 고종·순종 부자를 협박 모해하고 김홍륙 역관으로 하여금 음해로써 독다 암살 음모 사건 날조한 역모 수괴"라는 일갈 및 통박(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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