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승호
민승호(閔升鎬, 1830년 ~ 1874년 음력 11월 28일)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민치록의 양자이며, 명성황후의 양오라버니이다.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으로 흥선대원군의 처남이자 고종, 흥친왕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축출된 직후 민씨 정권의 수장이었으나 의문의 폭사를 당한다. 본관은 여흥으로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출생~사망 1830년 5월 29일 ~ 1875년 1월 5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8
민승호(閔升鎬, 1830년 ~ 1874년 음력 11월 28일)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민치록의 양자이며, 명성황후의 양오라버니이다.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으로 흥선대원군의 처남이자 고종, 흥친왕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축출된 직후 민씨 정권의 수장이었으나 의문의 폭사를 당한다. 본관은 여흥으로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생애
돈령부판사와 공조판서를 지낸 민치구와 부인 전주 이씨의 차남이었다. 외가 쪽으로는 도정궁으로 덕흥대원군의 후손이었다. 누이인 여흥부대부인이 남연군의 넷째 아들 흥선대원군과 혼인하면서 왕실의 근친(近親)이 되었다.
본래 민치구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11촌 아저씨뻘 되는 명성황후의 생부 민치록의 양자로 입양되었다.1 이에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봉사손 자격으로 철종 12년(1861년 신유해)에 음서로 관직에 올랐다.2 1863년 누이의 아들(고종)이 왕으로 즉위하였다. 고종 1년(1864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같은 해 홍문관 교리(종5품)을 제수받았고, 곧 응교(정4품), 전한(종3품), 규장각 직각(정3품), 가례도감 부제조(정3품 당상)로 파격 승진을 거쳤다.
고종 3년(1866년), 양누이동생인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봉되면서 이조참의(정3품 당상)으로 임명되었으며, 1867년 1월 호조참판에 승진되었다. 그 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 국서를 보내 와서 국교를 요청하였을 때 흥선대원군이 국교 수립에 반대하자 그에 맞서 찬성하였고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민씨 족당의 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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