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미 지로
미나미 지로(일본어: 南 次郎, 1874년 8월 10일 ~ 1955년 12월 5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 정치인이며 병과는 육군 기병이었다.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제7대 조선총독을 역임하였으며, 총독 재직 중 조선인에게 내선일체와 창씨개명령을 시행하였다. 1940년 1월 그는 창씨개명은 강제성이 아니라 자율성에 맡긴다고 발표하였으나 창씨개명은 강제로 단행되었고,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혼선과 조선인의 반발로 1942년 총독직에서 해임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A급 전범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었다.
출생~사망 1874년 8월 10일 ~ 1955년 12월 5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미나미 지로(일본어: 南 次郎, 1874년 8월 10일 ~ 1955년 12월 5일)는 일본 제국의 군인, 정치인이며 병과는 육군 기병이었다.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제7대 조선총독을 역임하였으며, 총독 재직 중 조선인에게 내선일체와 창씨개명령을 시행하였다. 1940년 1월 그는 창씨개명은 강제성이 아니라 자율성에 맡긴다고 발표하였으나 창씨개명은 강제로 단행되었고, 창씨개명 정책에 대한 혼선과 조선인의 반발로 1942년 총독직에서 해임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A급 전범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었다.
생애
초기 이력과 군 복무
미나미 지로는 1874년, 일본 제국 규슈 오이타현(大分縣) 히지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03년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기병으로서 러일 전쟁에 참가하였다. 이후에도 기병 지휘관으로 계속 복무하였으며, 육군대학 기병과목 교관, 기병연대장, 일본 육군성 군무국 기병과장 등을 지냈다. 그 뒤 재중국주둔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가 귀국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다.
1919년에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1926년 중장으로 승진하여 사단장이 되었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는 참모 차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일본군 제16사단장을 거쳐 조선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930년 대장으로 승진하였다.
육군 대신과 조선 총독
1931년 와카쓰키 레이지로(若槻禮次郞) 내각의 육군 대신으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돌아왔고, 그는 육군 대신 재직시절 관동군이 만주 침략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등의 전횡을 일삼아 이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1,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후 만주국에 부임하여 일본 대사 겸 관동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나, 1936년 2·26 사건의 여파로 예편하였다.
이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여 1920년대 전임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수립한 유화책인 를 뒤집고 각종 황국신민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가 부임한 6년 동안 " (內鮮一體)"의 모토 아래서 지원병 제도를 실시했으며, , 조선어 사용 금지 등의 민족 말살 정책을 강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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