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동구릉(東九陵)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왕릉군이다. 동구릉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1만 5891m에 달하는 구역에는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이 있고, 2009년 2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성 연도 미상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동구릉(東九陵)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왕릉군이다. 동구릉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1만 5891m2에 달하는 구역에는 9개의 능에 17위의 유택이 있고, 2009년 2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개요
조선을 세운 태조의 무덤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를 통하여 가족무덤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이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란 의미로, 무덤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철종 6년(1855)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태조가 죽은 뒤 하륜(河崙)에 의해 이곳을 무덤지역로 정하였다. 400여 년에 걸쳐 왕릉이 자리잡았음은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동구릉에는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인 현릉, 14대 선조와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 무덤인 목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무덤인 휘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무덤인 숭릉,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무덤인 혜릉,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무덤인 수릉, 24대 헌종과 효현왕후·계비 효정왕후의 무덤인 경릉 등 9개의 무덤이 있다.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을 기본으로 삼아서 만들었다.
동구릉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무덤을 만들 때 각 무덤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齋室)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각 무덤에 재실은 없고, 9개 무덤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중앙 북쪽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5개의 무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의 왕릉 중 한 지역내에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서오릉과 서삼릉이 있으나, 동구릉에 가장 많은 무덤이 있다.
역사
1408년(태종 8년) 5월에 태조가 승하한 뒤 지관과 대신들이 한양 주변 지역의 명당을 찾는데, 6월 12일 유한우와 이양달은 처음에 원평 봉성(蓬城)을 천거한다. 그러나 이후 이 가서 보고난 후 양달이기 때문에 를 천거하는데 태종은 이를 반려한다. 이후 6월 28일 검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가 자신의 집 근처인 을 하륜에게 추천하여 받아들여져 현재의 구리시 검암산에 위치한다. 7월 29일에 개경사(開慶寺)를 동구릉의 재궁에 설치한다. 9월 7일에 검암산 동쪽 입구에 태조의 영구(靈柩)가 도착하고, 9월 8일에 과 이 산을 둘러본 뒤, 9월 9일에 건원릉이란 이름으로 봉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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