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大韓航空 858便 爆破事件, 영어: Korean Air Flight 858) 또는 한국 한정으로 널리 쓰이는 명칭인 KAL(칼)기 폭파 사건(-機爆破事件)은 1987년 11월 29일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이드 국제공항과 태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을 경유한 뒤 서울 김포국제공항으로 오던 중 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북한이 파견한 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에 의해 공중 폭파된 사건으로 이 사건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일으킨 마지막 항공 테러이며 이 사건으로 북한은 2008년 9월까지 미국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또한 이 사고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면서 1983년 269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97년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2024년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에 이어 대한민국 국적 항공기 사고 중 역대 4번째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개요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은 승객과 승무원 등 115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항공기는 예정된 항로를 따라 비행하던 중 인도양 상공에서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과 마지막 교신을 나눈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후 항공기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1월 30일 관계 당국은 현지에 조사반을 파견하고 항공기의 행방을 찾기 위한 수색에 들어갔다. 인도양과 벵골만 일대를 중심으로 수색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항공기가 사고로 추락한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폭파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2월 1일에는 사건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주아랍에미리트 대한민국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대한항공 858편에 탑승한 뒤 아부다비에서 하차한 일본인 신분의 두 사람,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의 행적을 추적했다. 두 사람은 바레인 국제공항에서 검거되었으며, 검거 직후 독극물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다. 남성은 사망했고, 여성은 살아남아 수사를 받게 되었다.
12월 2일 청와대는 사건과 관련해 대북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대통령 선거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12월 7일 바레인에서의 수사가 일단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항공 858편 사건을 북한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방해 공작과 관련된 테러 사건으로 분석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2월 9일에는 현지에 파견되었던 조사단의 철수가 결정되었다. 12월 11일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었으나, 12월 15일 미국 국방부는 해당 물체가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12월 16일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같은 시기 국가안전기획부는 바레인에서 검거된 여성의 신원과 행적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12월 19일 교통부(現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 858편에 탑승했던 115명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
김현희의 진술과 수사 결과
1988년 1월 15일 수사 당국의 조사를 받던 여성은 자신의 이름이 김현희라고 밝히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현희는 북한의 지시에 따라 대한항공 858편에 폭탄을 설치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진술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현희의 진술과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사건을 북한에 의한 항공기 폭파 테러 사건으로 공식 규정했다.12
사건 이후 북한의 해외 공작 활동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졌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당국은 북한 공작원들의 행적을 조사해 관련 자료를 미국 측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역시 북한의 해외 공작 거점으로 지목된 빈 주재 북한대사관에 대한 조치를 강화했다.
북한은 대한항공 858편 사건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지만, 사건의 배경과 북한의 개입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재판과 사면
1989년 2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김현희를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990년 3월 중순에는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가 다시 발견되었다. 3월 27일 대법원은 김현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4월 12일 정부는 김현희를 특별사면했다. 1991년 6월 2일 김현희는 자신의 경험과 사건 이후의 삶을 기록한 수기집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출간했다. 1992년 7월 1일에는 두 번째 수기집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를 출간했다. 1997년 12월 28일 김현희는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했다.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재조명
2004년 들어 대한항공 858편 사건에 대한 정부의 수사 결과와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의문이 다시 제기되었다. 3월 23일 국가정보원은 사건의 공식 수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파괴공작》의 출판사 창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5월에는 KBS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항공 858편 사건의 수사 과정과 그동안 제기되어 온 의혹을 다루었다. 6월 28일 법원은 국가정보원이 제기한 해당 도서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12월 15일 서울중앙지검은 대한항공 858편 유가족들이 제기한 사건 기록 공개 소송과 관련해, 1심 재판부가 공개하도록 결정한 약 5천 쪽의 수사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증언과 잔해 발견
2012년과 2013년 김현희는 TV조선과 MBC 등에 출연해 대한항공 858편 사건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인터뷰했다. 2016년에는 대한항공이 ‘KE858’이라는 편명을 베이징발 인천행 노선에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29일 저녁 JTBC에서 방영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의 ‘미얀마 현지취재, KAL858 잔해를 찾아서’ 편에서는 대한항공 858편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벵골만 안다만 해역을 현지 취재하고, 해당 해역에서 항공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를 수거하는 과정을 다뤘다.3 2020년 1월 23일, 대구MBC 특별취재팀은 미얀마 안다만해에서 약 50m 깊이의 해저를 수색하던 중 대한항공 858편의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발생 이후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나온 이 보도는 오랫동안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던 항공기 잔해와 사건의 진상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미얀마 내전이 이어지면서 정국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현지 조사의 진행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2023년 12월 29일 대구MBC는 KAL858기가 바다에 불시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심해에서 발견된 잔해에는 날개와 엔진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에 따라 KAL858기의 재수색과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025년 12월 23일 국회에서는 KAL858기 동체 확인 조사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외교부는 미얀마 내전으로 현지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미얀마 군부와의 협의가 군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치적 논쟁
김광진 의원은 2016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KAL 858 사건)에 대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가정보원에 의한 자작극일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당시 김 의원은 테러방지법의 국정원 권한 확대에 반대하는 취지로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한편,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태영호는 이 사건의 배후에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태영호는 북한이 1980년대부터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특히 1988년 하계 올림픽의 서울 개최를 앞두고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대한항공 858편 폭파를 지시했다고 주장하였다.4
진실위의 재조사 결과
사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5가 이 사건을 "7대 우선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하여 조사하였고 2006년 8월과 2007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해 "조작이 아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안기부 조작설 등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대남공작조직의 주도에 의해 김현희와 김승일이 자행한 테러로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대선 전에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하기 위해 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실무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각종 의혹을 유발하게 된 측면이 있다.
— 국가정보원 (2007).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1 : 국정원 「진실위」보고서·총론》.
한편 2010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7년 중국에서 6자 회담이 열렸을 당시 북한 측의 리근(李根) 국장은 사석에서 "우리는 KAL기 사건 이후 한번도 테러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하여 858편 폭파 사건을 일으켰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6
2012년 美 KAL기 기밀문서 공개
11년 당겨 공개된 외교문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金 자살기도 수법 등 북한 소행 아닐 수 없어
- 추가도발 방지 위해 수집 증거 구·소련과 공유
- "김일성 부자는 정신병자" 전두환, 군사 보복 배제
- 한국도 미심쩍어 한 범행동기
- 잠비아 대사의 의혹제기와 미국의 반박
- 정부8일만에 입 연 김현희, 첫 한국말은 "미안합니다"
- 北 "가짜" 주장에 美 "김현희, 고정간첩 정확히 골라냈다"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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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미디어
관련 서적
- KAL 007, 풀리지 않는 의혹들 : 슐로스버그 저/ 홍성사 / 2003년
- 제5공화국 5(KAL기격추사건의진상) : 중원문화사 / 1993년
- 김현희는 가짜다 : 노다 미네오 저/ 두리미디어
- 배후 : 서현우 저 / 창해 / 2003년
- 과거와 대화 : 미래의 성찰,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