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시 전투
낭시 전투(Battle of Nancy)는 1477년 1월 5일 프랑스 도시 낭시(Nancy) 교외에서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Charles the Bold)과 로렌 공작 르네(René) 사이에서 일어난 부르고뉴 전쟁 최후의 결정적 전투이다. 르네의 군대가 승리하고, 사지가 절단된 샤를의 시신이 3일 후에 발견되었다. 샤를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프랑스 루이 11세는 전통에 따라 부르고뉴를 왕실에 귀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샤를의 외동딸 부귀공 마리는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여 이를 저지하였고, 네덜란드를 포함한 부르고뉴는 합스부르크
시작~종료 1476년 10월 22일 ~ 1477년 1월 5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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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도에서 같은 시대 보기 →낭시 전투(Battle of Nancy)는 1477년 1월 5일 프랑스 도시 낭시(Nancy) 교외에서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Charles the Bold)과 로렌 공작 르네(René) 사이에서 일어난 부르고뉴 전쟁 최후의 결정적 전투이다. 르네의 군대가 승리하고, 사지가 절단된 샤를의 시신이 3일 후에 발견되었다.1
샤를이 아들없이 사망하자 프랑스 루이 11세는 전통에 따라 부르고뉴를 왕실에 귀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샤를의 외동딸 부귀공 마리는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여 이를 저지하였고, 네덜란드를 포함한 부르고뉴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1
배경
1476년 부르고뉴 공작 샤를 1세는 로렌 공작 르네 2세의 군대로부터 로렌 공국의 수도 낭시(Nancy)를 탈환하기 위해 이곳을 포위했다. 심한 겨울이란 상황에도 불구하고, 샤를 1세는 날씨가 만약 호전된다면 시기를 놓쳐 재빨리 르네가 구원군을 이끌고 올 것 임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공성전을 완료하려고 하였다.
12월 하순 르네는 로렌과 라인 저지 동맹(Lower Union of the Rhine)으로부터 10,000~12,000명, 스위스 연방에서 용병 10,000명을 집결시켜 1477년 1월 초순 낭시를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눈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월 5일 이른아침 낭시에 도착했다. 샤를 1세은 르네의 군대가 가까이 왔음을 알았고, 낭시의 남쪽에 있는 강력한 방어거점에 군대의 대부분을 정렬시켰다.
그곳은 배후에 계곡물이 흐르는 골짜기로써 제일 좁은 장소에는 급경사에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샤를 1세은 스위스 군대가 급경사를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정확한 인원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으나, 현대의 학자는 4,000명~8,000명 사이로 보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근위병에게서 정원을 분리했기에 병력의 대부분은 졸병이었고, 이론적으로 많이 어림잡아도 실력의 50% 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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