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나석주(羅錫疇, 1892년 2월 4일~ 192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했으나 불발로 그쳤고 일경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결하여 순국했다.
출생~사망 1892년 ~ 1926년 12월 2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0
나석주(羅錫疇, 1892년 2월 4일~ 192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했으나 불발로 그쳤고 일경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결하여 순국했다.
생애
황해도 재령 출생이다. 16세에 재령군 북율면 진초리의 보명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한 뒤 농사를 지었다. 23세에 만주로 건너가 북간도 나자구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1
1920년 김덕영, 최호준 등 50명의 동지들과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고1 국내에서 부호들을 상대로 권총강도를 가장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였다.2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면장을 사살하였다. 이어 안악군의 친일파 부호를 사살한 후 중국으로 피신했다.
임시정부에서 경무국 경호원으로 활동하다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에서 하북성 한단에 있는 중국 한단 군관학교 육군 제1군사강습소의 군관단을 졸업해 한동안 중국군 장교로 중국 군대에서 복무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당시 경무국장)의 경호관,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6년 의열단의 고문이기도 했던 김구, 김창숙 등과 논의한 뒤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제의 식민지 수탈 기관의 파괴를 목적으로 마중덕(馬中德)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인 노동자로 위장한 채 국내에 밀파되었다. 그해 12월 28일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고 빠져나왔으나 은 불발되었다. 에 들어가서 일본인들을 권총으로 사살했다.바로 을 투척하였으나 불발하였다. 나석주는 일본경찰에게 총을 난사하며 일본경찰 7명을 사살하였다. 일본 경찰과 대치하면서 나석주는 군중을 향해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고 외쳤다.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몇 명을 사살한 나석주는 가지고 있던 으로 자결을 시도하여 총상을 입고 일경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당시 22발이 남았었다고 한다) 고등계 경부에게 심문을 받던 중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사망했다. 에서 살던 나석주의 장남 나응섭은 잠적한 뒤 으로 망명했으나, 일경에 체포되어 다시 로 압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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