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여만국전도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는 1602년에 예수회 이탈리아인 신부 마테오 리치와 명나라 학자 이지조(李之藻)가 함께 만들어 목판으로 찍어 펴낸 지도로서, 가로 533센티미터, 세로 170센티미터이며, 〈리치 지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도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묵와랍니가(오세아니아+남극)를 나타내고 있고, 각지의 민족과 산물에 대해 지리지의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국은 간단하게 처리하고 역사적인 설명을 첨가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그려졌고 동해의 일본
조성 1602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조성
- 1602년
- 종목
- 보물 (구)제849호 , (1985년 8월 9일 지정)
- 수량
- 1폭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국유
- 관리
- 서울대학교박물관
- 주소
-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박물관 (신림동,서울대학교)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는 1602년에 예수회 이탈리아인 신부 마테오 리치와 명나라 학자 이지조(李之藻)가 함께 만들어 목판으로 찍어 펴낸 지도로서, 가로 533센티미터, 세로 170센티미터이며, 〈리치 지도〉1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도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묵와랍니가(오세아니아+남극)를 나타내고 있고, 각지의 민족과 산물에 대해 지리지의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국은 간단하게 처리하고 역사적인 설명을 첨가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그려졌고 동해의 일본 쪽을 일본해, 태평양 쪽은 소동양이라고 표기하였다.2 또 타원형의 세계지도 바깥에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모습, 아리스토 천체 구조론에 의한 구중천설, 일월식도, 천지의도 등이 그려져 있다.
"아시아" "일본 해" "적도" 등 유럽의 말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 지도는 조선에서도 필사된 뒤 목판인쇄되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숙종 34년(1708) 관상감에서 제작한 〈곤여도병풍〉이다. 관상감에서는 이때 천문도와 함께 그려 〈건상도〉라 하여 짝을 이루었는데, 경기도 봉선사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한국전쟁 때 없어졌다가 최근 일본에서 발견되었다.
제작 목적
마테오 리치가 〈곤여만국전도〉를 제작한 목적은 자신이 만든 이 지도가 중국인이 원래 지녔던 중화적 세계관을 타파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혹은 자신들만이 문명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중국의 자만심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제작하였다. 이는 그가 1608년 8월 22일에 아콰비바 앞으로 보낸 편지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도에 적혀있는 우리들에 관한 여러 가지 일, 우리들의 성스러운 교법, 관습 등에 관한 것을 읽으면 황제와 황실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 서양 사물에 관해 묻고 싶은 마음이 언젠가는 생기자 않을까 하는…”
— 히라카와 스케히로,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동아시아, 2002, 423쪽.
판본
베이징 제1판, 곤여만국전도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베이징에서 이지조(李之藻)의 요청으로 제작하였다. 각각의 크기가 1.79×0.69미터인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지도는 현재 바티칸에 1부, 그리고 일본에 2부가 남아 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이광정(李光庭)과 권희(權憘)가 지도가 제작된 다음 해(1603년) 곤여만국전도를 구해 가지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이수광의 《》에 나와 있다. 그러나 이때 가지고 온 지도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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