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건국
단군왕검이 아사달(평양)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는 건국 신화·전승.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대는 고려·조선의 후대 사서가 간지로 환산해 정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연도는 아니다.
시작 기원전 2333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목차
개요
고조선 건국은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단군 신화에 담긴 건국 전승이다. 신화에 따르면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국 연대는 당대 기록이 아니라 수천 년 뒤의 사서가 정리한 것이다. 이 문서는 전승의 내용, 연대가 만들어진 과정, 역사학계의 해석을 나누어 설명한다.
이 문서의 연도와 위치는 신화·전승에 근거한 상징적 값이다. 지도 표지는 신화가 도읍으로 전하는 평양에 두었지만, 실제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동설이 유력하다(아래 '중심지 논쟁' 참고).
전승의 내용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1281년 무렵 편찬한 『삼국유사』 권1 「고조선(왕검조선)」 조다. 일연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이야기를 일곱 토막으로 나누는데,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하늘의 임금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했고, 환인은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보냈다.
-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며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 다스렸다.
-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빌자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고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곰은 이를 지켜 여자(웅녀)가 되었고 호랑이는 견디지 못했다.
- 웅녀와 환웅 사이에서 단군왕검이 태어났다.
-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하여 처음으로 '조선'이라 일컬었고, 뒤에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겨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으며,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이승휴의 『제왕운기』(1287)에도 단군 기록이 있는데, 곰이 아니라 환웅의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이 된 뒤 단수신과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고 하여 내용이 다르다. 조선 초의 『세종실록』 지리지는 이 부분에서 『제왕운기』 쪽을 따랐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대
『삼국유사』의 표기
『삼국유사』가 인용한 『위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다"고만 했고, 『고기』는 단군이 "당고(唐高, 요 임금) 즉위 50년 경인년"에 평양에 도읍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일연 스스로 주석에서 요 임금 즉위 원년이 무진년이라면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라며 의문을 달아 두었다. 즉 가장 오래된 기록부터 연대가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동국통감』의 정리
조선 성종 때인 1485년 완성된 관찬 사서 『동국통감』은 단군이 요 임금 시대의 무진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정리했다. 이 무진년을 서력으로 환산한 것이 기원전 2333년이며, 이후 이 연대가 표준처럼 쓰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는 이를 원년으로 하는 단군기원(단기)이 공용 연호로 쓰이기도 했다(1948~1961).
연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따라서 기원전 2333년은 중국 전설상의 성왕인 요 임금과 같은 시기에 나라를 열었다는 인식, 곧 '중국과 대등한 오랜 역사'를 강조하려는 후대의 역사의식이 반영된 연대로 이해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조선」 항목도 『삼국유사』의 건국 기년은 고조선 자체보다 각 시대의 역사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단군고기」 항목은 국가 성립에 필요한 청동기 시대 진입 시점과 이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반도와 요동의 청동기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2천년기 후반 이후에 본격화하며, 고조선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7세기 무렵의 일을 전하는 중국 문헌 『관자』다.
역사학계의 해석
신화로서의 의미
학계는 단군 신화를 역사적 사실의 직접 기록이 아니라, 고조선 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내력과 통치의 정당성을 설명한 건국 신화로 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조선」 항목은 이를 고조선 왕실의 내력을 밝힌 일종의 '본풀이'로 해석하며, 왕의 권위를 하늘의 혈통에서 찾는 정치 이데올로기이자 집단 제의를 통한 사회 통합 장치였다고 설명한다.
신화 요소의 해석
- 천신족과 토착 세력의 결합: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에서 변한 웅녀의 혼인을, 이주해 온 천신 숭배 집단과 곰을 숭배하던 토착 집단의 결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제정일치: '단군'은 제사장(제주),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뜻한다고 보아, 제사와 정치가 결합한 사회의 지배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 농경 사회의 반영: 풍백·우사·운사가 바람·비·구름을 맡았다는 대목은 농경을 중시한 사회상을 보여 준다고 본다.
- 후대 윤색: 환인을 불교의 제석으로 풀이한 주석 등 불교적 표현이 보인다는 이유로 고려 후기 창작설을 주장한 학자도 있었으나, 구전되던 신화가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후대 표현이 덧붙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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