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
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는 1993년 2월 26일, 미국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이다. 미수에 그쳤으나 6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작 1993년 2월 26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1993년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는 1993년 2월 26일, 미국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이다. 미수에 그쳤으나 6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배경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지원하는 미국으로 인해 중동지역은 반미감정이 극에 달하였고, 얼마 후 알카에다는 테러 계획을 수립하였다. 미국의 상징인 세계 무역 센터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계획은 1WTC에 폭탄을 터트려 2WTC 방향으로 무너트려 25만명의 희생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진행
테러 준비
- 1990년경 행동대장 람지 유세프는 알카에다 트레이닝 캠프에서 훈련을 받는다.
- 1991년 9·11 테러를 처음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유세프의 사촌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도움을 받아 미국을 향한 폭탄 테러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 1992년 대원들이 입국하기 시작한다. 람지 유세프와 또 다른 대원인 아메드 아자와 허위 여권으로 입국하지만 아메드 아자는 검문에서 폭탄 제조서가 발견되어 입국 금지당한다.
- 1992년~1993년 람지 유세프는 폭탄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테러
- 1993년 2월 중순에 람지 유세프는 폭탄 제조를 완료, 렌트한 라이더 밴에 폭탄을 장착한다.
- 테러 얼마 전, 유세프는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 중단,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단절, 미국의 중동 국가에 대한 내정 간섭 중단 3가지를 요구하며 요구 사항이 실행되지 않으면 세계 무역 센터가 첫번째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1993년 2월 26일 테러가 실행되었다. 람지 유세프와 에야드 이모일은 차를 지하 2층에 세우고 도화선에 불을 붙인 다음 도주했다. 12분 후 폭탄이 폭발, 6명이 사망하고 1,042명이 부상당했다.
피해
비상 발전기가 손상되었다. 또한 지하에 큰 구덩이가 생겼으며, 환풍 장치가 고장나 93층까지 연기가 올라갔다. 파워라인의 손상으로 35층과 36층 사이에 17명의 유치원생이 갇히는 등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도 많았다. 3WTC는 바로 아래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있어서 큰 피해를 입었다. B2~B4층의 팬케이크 붕괴로 300~400대의 차량이 파손되었다. 전기가 끊기면서 뉴욕의 대부분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이 일주일가량 무선 방송을 할 수 없었고, 맨해튼 남쪽의 통화 역시 원활하지 못했다.
층별 피해 상황
- 1, 2WTC 93층까지 연기가 올라갔다.
- 1층 - 바닥에 구덩이가 발생했다.
- B1층 - 더 큰 구덩이 (600x800m)가 생겼다.
- B2층 - B1층보다 3~4배 더 큰 구덩이가 발생했다. 이것은 B3~B4층까지 팬케이크 붕괴를 일으켰다.
- B3~B4층 - B2층보다 2~3배 큰 구덩이가 생겼다.
- B5층 - 비상발전기가 파손되었다. 7WTC 변압기가 폭발 조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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