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사건
12.3 사건(중국어: 一二·三事件, 포르투갈어: Motim 1-2-3)은 1966년 12월 3일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이스타두 노부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봉기로 중국 현지인에 대한 식민정권의 부정부패와 인종차별, 그리고 중국 본토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발생했다.
시작~종료 1966년 12월 3일 ~ 1967년 1월 2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12.3 사건(중국어: 一二·三事件, 포르투갈어: Motim 1-2-3)은 1966년 12월 3일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이스타두 노부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봉기로 중국 현지인에 대한 식민정권의 부정부패와 인종차별, 그리고 중국 본토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발생했다.
기원
포르투갈의 마카오 점령기는 대략 세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는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처음 정착한 1557년부터 1849년까지다. 이 기간 동안에는 포르투갈인 공동체에 대한 사법권만 있었다. ‘식민지 시기’로 알려진 두 번째 시기는 대략 1849년부터 1974년이다. 포르투갈 식민 행정국이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인과 중국인 공동체에 대해 모두 적극적인 역할을 행사한 시기가 이 시기였다.
1887년 3월 26일 맺어진 리스본 의정서를 통해 중국은 포르투갈의 마카오에 대한 ‘영구적인 점령과 통치’를 인정했고 포르투갈은 중국 정부의 동의 없이 제3국에 마카오를 양도하지 않는 데 동의했다. 이는 1887년 12월 1일 중국-포르투갈 우호통상조약을 통해 재확인됐다. 마카오의 식민통치 전반에 걸쳐 포르투갈계 마카오인들은 복잡한 식민지적인 관료주의와 부패 때문에 정체했다. 인종 분리와 구별도 사회 전반에 존재했다. 마카오의 통치 내에서 포르투갈계 주민들이 거의 모든 정부 관리들과 공무원 자리를 차지했다.
1945년 9월 중화민국 외교부는 포르투갈 정부 측에 마카오를 중국의 통치로 돌려놓길 원한다는 뜻을 표했지만 국공 내전 때문에 양측의 논의는 무기한 중단됐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의해 수많은 난민과 중국국민당 지지자들이 중국에서 마카오로 피신했다.
12.3 사건 이전 중국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모두 마카오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더불어 포르투갈 식민 정부는 육상 경계를 통한 접근성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과의 비공식적 관계를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마카오에서는, 특히 사업계 지도자들 사이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늘어났다.
전개
포르투갈 식민정권은 1557년 마카오를 무단 점거하면서부터 정착촌 건설을 명분으로 원주민들을 탄압, 살해했다. 1945년 이후 포르투갈이 식민지 주민들에게 잔혹한 인종차별과 인종청소를 가해하면서 마카오 전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마카오 원주민들은 인종차별과 종교차별 등 심각한 수윙디 사회구조적 폭력을 경험했으며,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마저 침해당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포르투갈은 사회주의 정부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면서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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