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
황조(黃祖, ? ~ 208년)는 중국 후한 말 형주목 유표 휘하의 무장으로 강하태수로 재직했다. 형주로 남하한 손견을 막아 죽였으며 그 아들 손책과 손권의 거듭된 강하 침공 역시 약 10년간 막아내다가 결국 잡혀 죽었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한 감녕을 냉대했으며 예형을 함부로 죽일 정도로 잔악무도하고 안하무인인 데다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했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0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황조(黃祖, ? ~ 208년)는 중국 후한 말 형주목 유표 휘하의 무장으로 강하태수로 재직했다. 형주로 남하한 손견을 막아 죽였으며 그 아들 손책과 손권의 거듭된 강하 침공 역시 약 10년간 막아내다가 결국 잡혀 죽었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한 감녕을 냉대했으며 예형을 함부로 죽일 정도로 잔악무도하고 안하무인인 데다가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했다.
생애
손씨 형제의 원수
191년(초평 2년) 반동탁 연합군이 분열하여 남양태수 원술과 발해태수 원소가 서로 싸웠다. 유표는 원소와 손잡은 탓에 원술이 손견을 시켜 형주로 쳐들어왔다.1 황조가 요격했지만 번성(樊城)과 등성(鄧城) 사이에서 격파당하고 현산(峴山)으로 달아났다. 192년 손견이 한수를 건너 유표의 거점인 양양성을 포위한 채 황조를 쫓아 현산으로 올라왔다가 매복한 궁수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양양 전투)2 이로써 손견을 저지하였다.
198년(건안 3년) 황조의 신세를 지고 있던 예형을 죽였다. 원래 예형은 에서 유표를 거쳐 (夏口)에 주둔하던 황조에게 와있었는데 글을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는 등 정갈하게 잘 썼으므로 황조가 그 손을 잡으며 ‘황조가 말하고 싶은 마음 속의 생각을 정확히 그대로 쓴다’고 말할 정도로 우대하였다. 어느 날 몽충(蒙衝)에서 선상 파티를 크게 열어 예형도 참석했는데 그 말이 불손하였다. 황조가 부끄러워 나무라자 되레 주시하며 “노인 시체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라고 을 날렸다. 황조가 크게 노하여 편형(鞭刑)을 부과하려하자 예형은 더 욕을 퍼부었다. 완전히 뚜껑이 열린 황조가 을 명하니 평소 예형을 싫어하던 (主簿)가 즉시 형을 집행하였다. 이전부터 예형과 친했던 큰아들 이 황급히 맨발로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황조 역시 후회하여 후하게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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