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 대첩
1376년(우왕 2) 7월, 61세의 최영이 출정을 자청해 홍산(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금강 유역을 휩쓸던 왜구를 크게 무찌른 전투이다.
시작~종료 1376년 7월 ~ 1376년 8월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홍산 대첩(鴻山大捷)은 1376년(우왕 2) 7월 최영(崔瑩)이 홍산(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이긴 전투이다. '홍산 전투'라고도 한다. 날짜는 음력이며, 정확한 날짜는 전하지 않는다.
배경
고려 말 왜구는 1350년부터 본격화해 우왕 대에 가장 극심했다. 우왕 즉위 뒤 왜구는 수도 개경을 노리다가 막히자 양광도 연안으로 방향을 돌렸고, 1376년에는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 부여와 공주 일대를 약탈했다. 그해 7월 공주목사 김사혁이 이들을 막다가 패해 공주가 함락되었다. 왜구는 다시 연산(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의 개태사를 습격했고, 이를 막던 원수 박인계가 전사했다.
소식을 들은 최영은 스스로 출정을 청했다. 우왕과 대신들은 그가 이미 61세라는 점을 들어 말렸으나, 최영이 거듭 청하여 결국 허락을 받았다.
전개
최영은 양광도 도순문사 최공철, 조전원수 강영, 병마사 박수년 등과 함께 홍산으로 향했다. 당시 왜구는 돌아갈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약탈을 계속하고 있었고, 맞설 상대가 없던 탓에 기세가 매우 높았다.
싸움터는 세 면이 절벽이고 길이 하나뿐인 좁고 험한 곳이었으며, 왜구가 먼저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수들이 겁을 먹고 나아가지 못하자 최영이 앞장서 돌진했다. 숲속에 숨은 적이 쏜 화살이 최영의 입술에 맞아 피가 흘렀으나, 최영은 동요하지 않고 먼저 그 적을 쏘아 쓰러뜨린 뒤에야 화살을 뽑았다고 전한다. 이에 고려군이 힘을 내어 싸워 왜구를 거의 섬멸했다.
결과
8월 최영이 개경으로 개선하자 조정은 황제의 사신을 맞는 예에 견줄 만큼 성대하게 맞이했고, 우왕은 최영을 철원부원군에 봉하고 군사들에게도 상을 내렸다. 우왕이 적의 수를 묻자 최영은 많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따라서 전투의 구체적 전황이나 양측 병력 규모는 알 수 없다.
영향과 의의
이 전투 뒤 왜구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백발의 최만호(崔萬戶)뿐"이라고 말할 만큼 최영을 꺼렸다고 한다. 왜구의 기세는 일시적이나마 꺾였으나, 이후에도 침입은 계속되어 1380년 진포 대첩과 황산 대첩으로 이어진다.
이설·논쟁
전투 장소는 흔히 부여군 홍산면의 태봉산성 일대로 비정되며, 그 안 태봉산 체육공원에 홍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장이 태봉산이 아니라 **비홍산(飛鴻山)**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임형수, 2016). 지도 표시는 홍산면 일대의 대략적 위치이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193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