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한민
호한민(胡漢民, 1879년 12월 9일~1936년 5월 12일)은 중화민국의 정치가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광동 번우 사람으로, 근대 시기의 민주 혁명가이며 정치인이다. 일본 유학중에 손문이 이끄는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였다. 중화민국정부 총참의 겸 문관장, 정치부장, 육군대원수대본영 총참의, 총통비서장 등을 지냈다.
출생~사망 1879년 12월 9일 ~ 1936년 5월 1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79년 12월 9일 ~ 1936년 5월 12일
- 출생
- 1879년 12월 9일, 광동 번우
- 사망
- 1936년 5월 12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중화민국
- 경력
- 중화민국정부 총참의 겸 문관장, 정치부장, 육군대원수대본영 총참의, 총통비서장
- 직업
- 정치인
- 소속
- 중국혁명동맹회
- 상훈
- 건국훈장 대통령장
- 위치
- 22.9381, 113.3652
호한민(胡漢民, 1879년 12월 9일~1936년 5월 12일)은 중화민국의 정치가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광동 번우 사람으로, 근대 시기의 민주 혁명가이며 정치인이다. 일본 유학중에 손문이 이끄는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였다. 중화민국정부 총참의 겸 문관장, 정치부장, 육군대원수대본영 총참의, 총통비서장 등을 지냈다.1
대한민국 독립운동 지원
- 1912년 신규식이 한중 양국의 우의 및 한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한 신아동제사에 참여함.
- 1921년 10~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신규식이 임시정부 승인문제로 호법정부 대총통 손문을 만날 때 호법정부 비서장으로 배석해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함.
- 1926년 11월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데려온 한인 청년 10여 명을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게 함.
- 1931년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을 면담하고 한중연대를 통한 대일항전을 계획함.2
각주
Footnotes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호한민」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448232)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 r28347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