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
허성(許筬, 1548년~161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이며, 호는 악록(岳麓) 또는 산전(山前)으로 불렸다. 1548년 조선 조선 명종 3년 부친 초당 허엽(許曄)과 첫째 부인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로 허난설헌(許蘭雪軒)의 큰 오빠이자 허봉(許篈), 허균(許筠)의 배다른 형제이다. 우성전의 처남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정헌대부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증직으로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548년 ~ 1612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8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48년 ~ 1612년
- 휘
- 허성
- 출생일
- 1548년
- 출생지
- 조선
- 사망일
- 1612년
- 국적
- 조선
- 경력
- 이조판서
허성(許筬, 1548년~161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이며, 호는 악록(岳麓) 또는 산전(山前)으로 불렸다.1 1548년 조선 조선 명종 3년 부친 초당 허엽(許曄)과 첫째 부인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로 허난설헌(許蘭雪軒)의 큰 오빠이자 허봉(許篈), 허균(許筠)의 배다른 형제이다. 우성전의 처남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정헌대부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증직으로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이 추서되었다. 1604년(선조 37년) 선무원종공신 1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녹훈되고,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1등(衛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개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1590년에는 왜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조선통신사가 결성되었는데, 1589년 11월 18일 정탁을 사은사로 차출하고, 황윤길을 정사, 김성일을 부사로 허성을 서장관으로 차출하여, 이듬해 1590년 3월 6일 대마도로 출발하였다. 1591년 1월 28일 일본에서 귀국한 허성은 귀국하자마자 탄핵을 당하여 바로 동래부에 수감되어 의금부로 압송된다.23
한편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 공로로 1604년(선조 37년) 동생 허균과 함께 선무원종공신 1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녹훈되었다.
벼슬은 성균관전적, 이조좌랑, 홍문관교리, 관상감교수, 사헌부집의, 홍문관응교, 의정부사인 등으로 시작해서 이조참의, 동부승지, , , , , , , 등을 하면서 특진관을 겸했으며 , , 예조참판을 거친 뒤 , , 로 지경연사와 비변사당상을 겸했고 광해군 때는 지중추부사, 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허성」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9111238)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8 · r3393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