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겸
한백겸(韓百謙, 1552년~161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이다.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7대손 및 그의 손자인 좌찬성 한계희(韓繼禧 : 한명회의 사촌)의 5대손이다.
출생~사망 1552년 ~ 161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4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52년 ~ 1615년
- 출생
- 1552년
- 사망
- 1615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직업
- 문신, 학자
한백겸(韓百謙, 1552년~161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이다.12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7대손 및 그의 손자인 좌찬성 한계희(韓繼禧 : 한명회의 사촌)의 5대손이다.
생애
가문 및 생애 초기
한백겸은 1552년에 태어났다. 아버지 한효윤(韓孝胤)은 함경도 경성의 경성판관을 지냈고, 숙부인 한효순(韓孝純)은 대북(大北)파의 영수이며 광해군때 좌의정으로서 폐모론을 주도했으나 한백겸 형제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고 당파로는 남인(南人)에 속했다. 아우 한준겸(韓浚謙)은 서인에 속하였으며, 문장에 뛰어났고 선조(宣祖)의 유언을 받은 일곱 신하의 한 사람으로서 호조판서, 5도도원수를 역임하고 인조의 장인으로서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를 지냈다. 그러나 한백겸은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던 행촌(杏村) 민순(閔純)의 문하에 들어가 그로부터 《소학》과 《근사록(近思錄)》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계속하여 의리(義理)에 관한 연구에 힘써 육경논맹(六經論孟)과 염락관민(濂洛關閩)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학문 연마와 관직 생활
한백겸은 과거 시험에는 응하지 않고 학문 연마에만 힘을 쏟다가, 1586년(선조 19) 주변의 천거로 받아 관직에 올라 중부참봉(中部參奉)·경기전(慶基殿) 참봉·호조좌랑·형조좌랑을 지내다가 외직인 황해도의 안악현감으로 발령받아 2년간 근무하다가 다시 함종현령을 지내고 강원도 영월군수에 부임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 모반 때 연좌되어 귀양 갔다. 임진왜란 때 석방되어 적소에서 적군에게 아부하여 난을 선동한 자들을 참살한 공으로 내자직장(內資直長)이 되었다가 여러 내외직을 거친다.
1602년 청주목사를 지내고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통정대부에 오른다. 판결사와 호조참의를 지냈다. 1608년에 선조가 죽었을 때 대신들은 한백겸이 예(禮)에 밝다 하여 빈전(殯殿)의 모든 상례(尙禮)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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