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충렬왕(忠烈王, 1236년 4월 10일, 율리우스력 4월 3일 ~ 1308년 8월 7일 율리우스력 7월 30일) 또는 경효왕(景孝王)은 고려의 제25대 국왕(재위: 1274년 7월 30일 이다. 휘는 거, 초명은 심, 춘, 첫 시호는 순성수정상승대왕, 원에서 내린 시호는 충렬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광문선덕경효대왕이다. 존호는 광문선덕이다. 원종과 순경태후 김씨의 맏아들이다. 원나라의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여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으며, 충렬왕 이후의 국왕들은 원나라 황족의 딸을 정비 또는 후궁으로 맞이하였다.
출생~사망 1236년 4월 3일 ~ 1308년 7월 3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236년 4월 3일 ~ 1308년 7월 30일
- 재위
- 1274년 7월 30일 ~ 1298년 3월 9일 (양력) 1298년 10월 1일 ~ 1308년 8월 7일 (양력)
- 전임
- 원종
- 후임
- 충선왕
- 재위
- 미상 ~ 1260년 9월 15일 (양력)
- 전임
- 의종의 태손
- 후임
- 최후의 왕태손
- 재위
- 1260년 9월 15일 ~ 1274년 7월 30일 (양력)
- 전임
- 왕태자 전 (원종)
- 후임
- 왕세자 원 (충선왕)
- 재위
- 1298년 3월 9일 ~ 1298년 10월 1일 (양력)
- 전임
- 태상왕 원종
- 후임
- 태상왕 충선왕
- 휘
- 왕거(王昛) 왕심(王諶), 왕춘(王賰)
- 별호
- 태손(太孫)
- 시호
- 고려: 광문선덕순성수정상승대왕(光文宣德純誠守正上昇大王), 광문선덕경효대왕(光文宣德景孝大王)원: 충렬왕(忠烈王)
- 능호
- 경릉(慶陵)
- 출생일
- 1236년 4월 10일(1236-04-10) (양력)
- 사망일
- 1308년 8월 7일(1308-08-07)(72세) (양력)
- 사망지
- 고려 개경 신효사
- 부친
- 원종
- 모친
- 순경태후 김씨
- 위치
- 38.3167, 127.2333
충렬왕(忠烈王, 1236년 4월 10일 (음력 2월 26일), 율리우스력 4월 3일 ~ 1308년 8월 7일 (음력 7월 13일) 율리우스력 7월 30일) 또는 경효왕(景孝王)은 고려의 제25대 국왕(재위: 1274년 7월 30일 (음력 6월 18일, 율리우스력 7월 23일 ~ 1298년 3월 9일(음력 1월 19일), 율리우스력 3월 2일, 복위 : 1298년 10월 1일(음력 8월 18일, 율리우스력 9월 24일) ~ 1308년 8월 7일)이다.
휘는 거(昛), 초명은 심(諶), 춘(賰), 첫 시호는 순성수정상승대왕(純誠守正上昇大王), 원에서 내린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광문선덕경효대왕(光文宣德景孝大王)이다. 존호는 광문선덕(光文宣德)이다. 원종과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金氏)의 맏아들이다.
원나라의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여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으며, 충렬왕 이후의 국왕들은 원나라 황족의 딸을 정비 또는 후궁으로 맞이하였다.
생애
1236년(고종 23년), 당시 태자였던 왕태자 식(원종)과, 태자비 김씨(정순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 이듬해 어머니를 여의었다.
1259년(고종 46년), 할아버지인 고종이 붕어하였는데, 당시 아버지 원종은 원나라에 있었으므로 고종의 장례를 주관하고 아버지가 귀국할 때까지 반년간 국정을 임시로 돌보았으며 관례를 치렀다.
1260년(원종 1년) 8월, 태자로 책봉되었다. 1274년(원종 15년) 5월, 쿠빌라이 칸의 딸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원나라에서 혼인하였다. 혼인한 그해 음력 6월 원종이 붕어하자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즉위한 그해 쿠빌라이의 강요로 일본 정벌에 동로군(東路軍)을 파견하였다.
1276년(충렬왕 2년) 3월, 원나라 관리 다루가치가 충렬왕에게 말하기를, "선지(宣旨)라고 일컫고, 짐(朕)·사(赦)라고 일컫는 것이 어찌 참람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지적을 하자 충렬왕이 고려 관리 중찬 김방경과 좌승선 박항에게 이 지적을 해명하라고 해 "감히 참람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종(祖宗)께서 서로 전하여 오던 옛날 법을 따른 것뿐입니다."라고 해명하였다. 이 날 이후 고려는 "짐"은 "고" 또는 "과인"으로, "폐하"는 "전하"로, "태자"는 "세자"로, "선지"는 "왕지"로 명칭이 격하 되었다.2 또한 원종을 마지막으로 왕의 사후 태묘에 봉안하는 위패에 올리는 묘호인 '조', '종'을 쓰지 못하고 시호만으로 칭했다. 충렬은 원에서 보낸 시호이다. 충렬왕이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으므로 몽골에서 온 칙사나 장군과 지위가 같다고 보고 국왕이 이들과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상대하는 것을 중지하고, 높은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이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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