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최승희(崔承喜, 1911년 11월 24일~1969년 8월 8일)는 경기도 경성부 출신이며, 조선 최고의 무용가 였으며, 6.25 전쟁 당시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용가로 활동하였으며,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지만 탈북을 하는 과정에서 밤나무에 달려 총살당하였다고 전해진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남편은 문학평론가 안막이다. 마지막 남은 직계 제자는 현재 2000년대 초반 탈북을 한 무용가 김영순이다.
출생~사망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11년 11월 24일 ~ 1969년 8월 8일
- 본명
- 최민수
- 출생
- 1911년 11월 24일(1911-11-24), 경기도 경성부
- 사망
- 1969년 8월 8일(1969-08-08)(57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성별
- 여성
- 배우자
- 안막
- 위치
- 37.5600, 126.9900
최승희(崔承喜, 1911년 11월 24일~1969년 8월 8일)는 경기도 경성부 출신이며, 조선 최고의 무용가 였으며, 6.25 전쟁 당시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용가로 활동하였으며,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지만 탈북을 하는 과정에서 밤나무에 달려 총살당하였다고 전해진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남편은 문학평론가 안막이다.
마지막 남은 직계 제자는 현재 2000년대 초반 탈북을 한 무용가 김영순이다.
생애
무용 입문
경기도 경성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강원도 춘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뒤 경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를 사사했다.
무용 활동
두 차례 일본 유학 이후에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 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반도의 무희》(1936)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 《나의 자서전》(1936)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수 년 동안 칠레 등에서의 해외 순회 공연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예술 활동
광복 후 남편인 안막을 따라 월북해서 최승희무용연구소(평양시)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연금 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후 34년뒤인 2003년 2월 한설야와 함께 복권되었고, 같은해 묘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되었다.1
무용계의 영향
최승희는 신무용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작품으로는 〈영산춤〉, 〈에헤라 노아라〉, 〈달밤의 곡〉, 〈반야월성곡〉, 〈우조춤〉, 〈칼춤〉, 〈보살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 〈광상곡〉, 〈가면의 춤〉, 〈승무〉, 〈인도인의 비애〉, 〈해방을 구하는 사람들〉, 〈방랑인의 설움〉, 〈봉산탈춤〉, 〈유격대의 아들〉 등이 있고, 에서 쓴 저서로 《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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