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뚱
찐뚱(베트남어: Trịnh Tùng / 鄭松 정송,1550년 12월 19일 ~ 1623년 7월 17일)은 대월 후 레 왕조의 정치인, 찐 주의 제3대 왕(재위: 1570년 ~ 1623년)이다.
출생~사망 1550년 ~ 1623년 7월 17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50년 ~ 1623년 7월 17일
- 재위
- 1570년 9월 19일 ~ 1623년 7월 17일
- 전임
- 준덕후(俊德侯) 찐꼬이(鄭檜)
- 후임
- 청왕(淸王) 찐짱(鄭梉)
- 휘
- 찐뚱(Trịnh Tùng/鄭松/정송)
- 별호
- 복량후(Phúc Lương Hầu/福良侯), 장군공(Trường Quận Công/長郡公), 장국공(Trường Quốc Công/長國公)
- 묘호
- 성조(Thành Tổ/成祖)
- 시호
- 예무(Duệ Vũ/睿武)
- 존호
- 공화관정철왕, (Công Hòa Khoan Chính Triết Vương, /恭和寬正哲王)
- 부친
- 태국공(太國公) 찐끼엠(鄭檢)
- 모친
- 태비(太妃) 응우옌티응옥바오(阮氏玉寶)
- 배우자
- 태비(太妃) 당티응옥자오(鄧氏玉瑤), 정비(正妃) 라이티응옥누(賴氏玉柔)
찐뚱(베트남어: Trịnh Tùng / 鄭松 정송,1550년 12월 19일(음력 11월 12일) ~ 1623년 7월 17일(음력 6월 20일)1)은 대월 후 레 왕조의 정치인, 찐 주의 제3대 왕(재위: 1570년 ~ 1623년)이다.
생애
투언빈 2년 11월 12일(1550년 12월 19일), 찐끼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복량후(Phúc Lương Hầu/福良侯)로 봉해졌다.
찐찌 13년 2월 18일(1570년 3월 24일), 찐끼엠이 병사하자 찐꼬이가 뒤를 이었다. 막 왕조가 이 틈을 타 대장(大將) 막낀디엔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게 하였다. 찐꼬이는 친히 병사를 이끌고 방어하였으나 대패하였고, 막 왕조에 투항하였다. 그해 8월 20일(1570년 9월 19일), 찐뚱은 장군공(Trường Quận Công/長郡公), 절제각처수보제영(節制各處水步諸營)으로 봉해졌다. 9월, 찐뚱에게 좌상(左相)이 가봉되었다.
찐찌 14년(1571년) 2월, 찐뚱이 태위(太尉), 장국공(Trường Quốc Công/長國公)으로 진봉되었고, 북벌을 개시하여 한 차례 탕롱을 공격해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572년에 막낀디엔이 남하하여 청화(淸化)를 습격하자 전황이 역전되었고, 황제 레 영종은 예안(乂安)으로 달아나니 찐뚱은 할 수 없이 회군하여 이를 구원하였다. 이후 레 영종이 조정의 신하들과 공모하여 찐뚱을 제거하려고 기도하였으나 찐뚱에게 발각되었고, 찐뚱은 선수를 쳐 영종을 폐위한 뒤 죽이고 레 세종을 옹립하였다.
찐뚱은 쉬지 않고 막 왕조와 전쟁을 벌여 막낀디엔과 서로 이기고 지곤 하였다. 그런데 막낀디엔이 1580년에 병사하자 막 왕조의 세력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찐뚱은 이 틈을 타 1591년에 대거 북벌하여 이듬해 1592년에 탕롱을 공격해 크게 이겼으며, 막 왕조의 황제 막머우헙과 막전을 차례로 잡아 살해하였다.
꽝흥 22년 4월 7일(1599년 5월 1일), 찐뚱이 막 왕조를 멸한 큰 공로를 세웠다 하여 레 세종에 의해 도원수총국정상부평안왕(都元帥總國政尙父平安王)으로 봉해졌고, 탕롱에 머무르며 지켰다.
호앙딘 20년(1619년) 3월, 레 경종이 찐뚱의 아들 찐쑤언과 공모하여 찐뚱을 죽이고 황권을 되찾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두달 후인 5월에 결국 찐뚱에게 발각되었으며, 찐뚱은 찐쑤언을 폐서인한 뒤 경종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그리고 6월에 을 옹립하였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찐뚱」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7553350)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 r17944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