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
장량(張良, ?~기원전 186년)은 중국 전국시대, 초한쟁패기, 전한 시기의 전략가, 정치가이다. 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소하(蕭何), 한신(韓信)과 함께 '삼걸(三傑)'의 일원으로, 동양 문화권에서 참모의 대명사로 통한다. 사마천(司馬遷)은 탁월한 식견을 지닌 ‘하늘이 내린 참모’라 평했으며 가장 이상적인 책략가로 전한 고제의 모든 결정에 관여한 장자방(張子房)을 꼽았다. 전략적인 지혜를 잘 써서 유방(劉邦)이 한을 세우고 천하를 통일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고 한 고조로부터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출생~사망 기원전 262년 ~ 기원전 18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기원전 262년 ~ 기원전 186년
- 사망
- 기원전 186년
- 성별
- 남성
- 국적
- 한
- 직업
- 전략가, 정치가
장량(張良, ?~기원전 186년)은 중국 전국시대, 초한쟁패기, 전한 시기의 전략가, 정치가이다. 자는 자방(子房)1,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소하(蕭何), 한신(韓信)과 함께 **'삼걸(三傑)'**의 일원으로, 동양 문화권에서 참모의 대명사로 통한다. 사마천(司馬遷)은 탁월한 식견을 지닌 ‘하늘이 내린 참모’라 평했으며 가장 이상적인 책략가로 전한 고제의 모든 결정에 관여한 장자방(張子房)을 꼽았다.
전략적인 지혜를 잘 써서 유방(劉邦)이 한을 세우고 천하를 통일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고 한 고조로부터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벌어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 장자방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생애
장량의 할아버지인 장개지(張開地)는 전국시대 한(韓)의 소후(昭侯), 선혜왕(宣惠王), 양왕(襄王)등 3대에 걸치는 군주 아래서 재상을 지냈고, 아버지 장평(張平)도 희왕(釐王), 환혜왕을 섬기며 재상을 맡았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장량의 조상은 한의 왕족이라 주 왕실과 같은 희성(姬姓)이었지만 진의 통일 이후 성명을 바꿨다고 하면서, 옛날 한나라에 있던 장거질(張去疾)·장견(張譴)이 장량의 선조가 아닐까 추측했다.
아버지가 죽고 20년 뒤인 기원전 230년에 한이 진에 멸망하여 집안은 몰락했고, 그때 아직 관직을 얻지는 못한 채였다.2
조국을 멸망시킨 복수를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모두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동생이 죽었을 때조차 장례 비용을 대주지 않았다고 한다. 동지를 찾아 동쪽으로 떠난 장량은 창해공(滄海君)이라는 자를 얻어 대화를 나눠보고, 창해공으로 하여금 기원전 218년경, 박랑사(현재의 허난 성 양장)를 지나는 시황제의 행차를 노리고 무게가 120근(약 30kg)이나 되는 철퇴를 던져 시황제가 탄 수레를 부수어 시황제를 암살하려 했다. 그러나 철퇴는 시황제의 수레가 아닌 다른 빈수레에 맞아 암살은 실패하고 장량 등은 도망쳤다. 이름까지 바꾸고 하비에 숨은 그는 황석공이라는 인물로부터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사기》에 실린 관련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장량이 다리를 건너는데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자신의 신발을 다리 밑으로 던지고는 장량더러 가서 주워오라고 했다. 장량은 화를 참고 가서 주워다 공손하게 바쳤지만, 노인은 다시 자신의 발을 내밀며 신겨달라고 했다. 장량은 이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눈치채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노인에게 신발을 신겼는데, 노인은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노인은 다시 돌아와 장량에게 가르쳐줄 것이 있으니 닷새 뒤 아침에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닷새 뒤 아침에 장량은 약속 장소로 갔지만, 이미 노인은 그곳에 와있었고 어른과 약속해놓고 그것을 어겼다며 장량에게 핀잔을 주고는 닷새 뒤에 다시 오라고 하고 가버렸다. 닷새가 지나서 장량은 다시 해가 뜨기 전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려 했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장량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면서 다시 닷새 뒤에 오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장량은 다시, 이번에는 아예 밤부터 약속 장소에 나가 노인을 기다렸고, 잠시 후에 나타난 노인은 장량을 칭찬하며 그에게 (太公望)의 병법서를 전해주며 "13년 뒤에 산기슭에서 네가 마주치게 될 노란 돌이 바로 나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훗날 장량은 이 예언대로 자신이 산에서 발견한 노란 돌을 가지고 돌아와 이를 가보로 전했으며, 사후 장량의 무덤에도 함께 부장되었다고 한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장량」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440282)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 r26038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